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먹거리 대신 먹거리 그림? 스승·지인에 선물한 박수근의 애틋한 굴비 그림

등록 2022-02-21 08:59수정 2022-03-09 04:57

[작품의 운명]
1950~60년대 그려진 석점
한국 정물화 최고 수작 재조명
은사 오득영 존재 알려지고
화상이 판뒤 1만배로 되산 내력
박수근의 1962년 작 <굴비>. 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반도화랑 직원이었던 시절에 작가의 부인 김복순에게서 결혼 선물로 받았던 작품이다.
박수근의 1962년 작 <굴비>. 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반도화랑 직원이었던 시절에 작가의 부인 김복순에게서 결혼 선물로 받았던 작품이다.
꾸덕꾸덕 잘 말린 굴비 묶음을 보면 누구나 입맛을 다실 것이다. 그만큼 굴비는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특별한 먹거리다. 그런데 이 생선이 한국 미술판에서 최근 들어 각별한 역사적 아이콘으로 기억되면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1950~60년대 전후 서민들의 삶과 풍경들을 화강암 질감의 화면 속에 펼쳤던 거장 박수근(1914~1965)의 필력 덕분이다. 생전 10년 기간을 두고 꾸준히 그린 굴비 정물 그림들이 한국 정물화의 역사를 대표하는 최고 수작으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전시실에 나란히 걸린 작가의 1952년 작 <도마 위의 조기>(왼쪽)와 1962년 작 <굴비>.
박수근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전시실에 나란히 걸린 작가의 1952년 작 <도마 위의 조기>(왼쪽)와 1962년 작 <굴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지난해 말부터 절찬리에 열리고 있는 박수근 회고전 ‘봄을 기다리는 나목’(3월1일까지)이 기폭제가 됐다. 1부 전시실에 가면, 박수근이 10년 동안 그렸던 석점의 굴비 그림들이 잇따라 내걸린 것을 보게 된다. 박수근이 1920년대 어린 자신을 화가의 길로 처음 이끌어주었던 보통학교 담임 스승 오득영(1904~1991)에게 직접 그려 선물했던 1952년 작 <도마 위의 조기>가 첫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옆에 나란히 내걸린 작품이 10년 뒤 그린 1962년 작 <굴비>로, 1960년대 초 서울 을지로 반도화랑 직원으로 일하면서 박수근과 인연을 맺었던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원래 갖고 있었던 소장품이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966년, 박 회장이 결혼했을 때 작가의 부인 김복순이 선물로 건네주었던 내력을 지녔다. 이와 별개로 두 작품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왼쪽 벽에도 비슷한 구도의 1952년 작 <도마 위의 굴비>가 내걸려 있는데, 같은 해 거장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린 <도마 위의 감자>(개인 소장)와 한 짝처럼 붙여 선보이고 있다.

박수근의 1952년 작 <도마 위의 조기>. 보통학교 시절 스승 오득영에게 선물해, 그의 손자가 소장해왔다. 10년 뒤에 그린 명작 <굴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비교 감상의 재미를 안겨준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우툴두툴한 표면의 질감 효과가 도드라지지 않고 구도도 다소 다르다.
박수근의 1952년 작 <도마 위의 조기>. 보통학교 시절 스승 오득영에게 선물해, 그의 손자가 소장해왔다. 10년 뒤에 그린 명작 <굴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비교 감상의 재미를 안겨준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우툴두툴한 표면의 질감 효과가 도드라지지 않고 구도도 다소 다르다.
이 3종의 굴비 그림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전성기인 1962년 작 <굴비>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굴비 두 마리를 하드보드지에 실감나게 그렸다. 표면이 도드라진 특유의 마티에르 효과 속에 두 굴비가 빚어내는 명료한 형태감과 서로 몸을 포개고 큰 눈과 입을 앙다문 표정에서 나오는 조형적 긴장감이 조화를 이룬 근현대 정물화의 걸작이다. 사실적 형태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두툼하고 오톨도톨한 마티에르 등의 작가적 개성이 여물게 박혀 있다.

그보다 10년 전 그린 <도마 위의 조기> 또한 하드보드지에 그렸지만, 특유의 개성적 마티에르는 보이지 않고 분방하게 붓질을 놀리면서 포개어진 조기의 사실적 묘사에 치중했다. <도마 위의 굴비>는 같은 해 그렸지만, 겹쳐진 굴비 모양을 좀 더 단순화시키고, 그 옆에 칼을 놓음으로써 조형적 구성의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크기가 가로세로 20㎝ 안팎이지만, 그림 속을 꽉 채운 소재의 밀도감과 화면에 덧칠한 물감층 구사 기법 등을 통해 화풍의 변모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1952년작 <도마 위의 굴비>. 개인 소장. 박수근이 굴비나 조기를 그린 그림은 모두 석점이 전해지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스승 오득영의 손자가 소장한 <도마 위의 조기>와 함께 초창기 도상을 보여준다.
1952년작 <도마 위의 굴비>. 개인 소장. 박수근이 굴비나 조기를 그린 그림은 모두 석점이 전해지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스승 오득영의 손자가 소장한 <도마 위의 조기>와 함께 초창기 도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당시 궁핍한 살림에 비싼 생선이던 굴비를 수시로 보내드릴 수 없는 사정 탓에 명절마다 떠오른 은사와 지인들을 생각하면서 실물 대신 생생한 필치로 그려 선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은사 오득영에게 보낸 1952년의 조기 그림은 전시를 앞두고 출품작들을 연구·선정하는 과정에서 발굴됐다. 손녀와 손자 등 후손들과 1년 이상 출품 협의를 벌이다 이들이 뒤늦게 작품의 존재를 알려 극적으로 출품된 것이다. 박명자 화상에게 보낸 굴비 그림은 1970년 박씨가 당시 돈으로 2만5000원에 팔았다가 2002년 강원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개관 뒤 1만배가 오른 2억5000만원에 되사서 기증한 내력을 갖고 있다.

​박수근이 1960년대 전반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소품 <초가집>. 작가의 스승 오득영의 손녀가 소장해온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 최초로 공개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작품과 소재와 구도, 기법, 재료가 거의 같고 마티에르만 미묘한 차이를 보여 눈길을 끈다.
​박수근이 1960년대 전반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소품 <초가집>. 작가의 스승 오득영의 손녀가 소장해온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 최초로 공개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작품과 소재와 구도, 기법, 재료가 거의 같고 마티에르만 미묘한 차이를 보여 눈길을 끈다.
오득영은 그동안 박수근의 작품 내력에서 존재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양구보통학교 시절, 박수근에게 미술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준 교육자였다. 박수근은 이후 그림 수업을 받고 화가로 성장한 뒤에도 그를 소중한 은인으로 생각했다. 춘천, 홍천 등으로 학교 임지를 옮겨 다니다 나중엔 춘천에 한의원을 차린 오득영을 평생 만나고 교유하면서 끊임없이 그림을 선물하고 정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오득영과 후손들은 집에 적지 않은 분량의 박수근 컬렉션을 갖게 됐지만, 박수근이 1970년대 큰 인기를 누리며 국민 화가로 등극한 뒤 상당수 작품이 처분됐다. 그나마 초창기 수채화와 굴비 그림 등 소품을 후손이 갖고 있다가 이번 전시에 공개하게 됐다.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학예사는 “오득영 선생이 학교 임지를 옮기면서 선물받은 작품을 재직하던 학교에 두고 가기도 했기 때문에, 박수근이 인기 작가가 된 뒤 많은 화상들이 그가 재직했던 학교를 찾아다니며 박수근의 작품을 수소문했다는 이야기도 후손들한테 들었다”고 증언했다.

박수근이 1963년 그린 소품 <초가집>.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다.
박수근이 1963년 그린 소품 <초가집>.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다.
전시에 나온 오득영 후손의 컬렉션 작품들 가운데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1960년대 초반 초가집 풍경을 그린 소품 <초가집>이다. 이건희 컬렉션 소장품이었다가 지난해 기증된 1963년 작 <초가집>과 소재, 구도, 하드보드지 화폭 재료 등이 거의 같은데, 두 작품 모두 특유의 화강암질 마티에르가 보이지 않고 분방하거나 텁텁한 색층의 변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작가가 세간에 알려진 대로 화폭의 배경을 거친 암석 질감으로만 뒤덮지 않고 캔버스의 재료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기법의 변주를 모색했다는 것을 일러준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