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바닥과 벽에 굽이쳐 파도치는 붓질…그림 속을 거니는 듯 관람

등록 2022-06-02 05:00수정 2022-06-02 10:04

중견작가 이배 신작전 눈길…특출한 공간적 상상력
부산 조현화랑 본관 1층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배 작가의 대형 신작 <붓질>. 전시장 바닥과 벽을 화폭으로 삼고 그 위에서 한순간 흘러가는 작가의 호흡과 움직임을 먹붓으로 단숨에 표현해 그렸다. 설치 작품 같은 배치를 통해 관객이 그림 속 공간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노형석 기자
부산 조현화랑 본관 1층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배 작가의 대형 신작 <붓질>. 전시장 바닥과 벽을 화폭으로 삼고 그 위에서 한순간 흘러가는 작가의 호흡과 움직임을 먹붓으로 단숨에 표현해 그렸다. 설치 작품 같은 배치를 통해 관객이 그림 속 공간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노형석 기자

먹물 줄기가 바닷속 해류처럼 바닥을 흐르는 전시장이다. 화가가 온몸을 움직여 붓질한 먹물의 마디들이 모여 줄기를 이루고 그 줄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벽을 향해 굽이쳐 간다. 벽과 바닥 바로 옆으로 트인 난간 테라스 너머로 무대 배경처럼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의 땅과 바다가 만나는 절경이 펼쳐져 있다.

지금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자리한 조현화랑 1·2층에 가면 만나게 되는 중견 작가 이배(66)씨의 신작전 ‘비스듬히’(oblique)는 여느 그림 전시에선 보고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먹선과 흰 여백밖에 없는 그의 그림 속을 실제로 산책객이 거니는 듯한 추상의 환각이다. 입체적인 공간 설치 작품을 방불케 하는 신작 <붓질>은 전시장 바닥과 벽을 화폭으로 삼고 그 위에서 한순간 흘러가는 작가의 호흡과 움직임을 먹붓으로 단숨에 표현해 그렸다.

이배 작가는 1980년대 말 프랑스에 정착한 이래 숯덩이 작업과 흑백의 대비감이 부각된 수묵 회화를 수십여년간 연마해왔다. 최근 수년 사이 한국 미술 시장에서 거장 이우환의 뒤를 잇는 최고의 블루칩 작가로 등극한 그의 신작들은 연초부터 화랑가에서 주목 대상이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벌인 조현화랑의 재개장 전시 레퍼토리가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컬렉터들과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작품 실체를 놓고 관심이 쏠렸는데, 실제로 공개된 작품들은 특출한 공간적 상상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지난달 12일, 미술장터 아트부산의 개막날에 함께 공개된 전시장은 수려한 풍광을 먼저 내보이며 다가왔다. 원형의 테라스 너머로 멀리 해운대 앞바다와 오륙도, 대마도가 아른거리는 가운데 먼저 들어간 1층은 간결하고 단호한 흑백의 대비가 돋보인다. 백설처럼 온통 하얗게 칠한 벽면과 바닥면을 연속된 검은 먹선 덩어리들의 활기 찬 흐름들로 뒤덮고, 두 면의 접점까지 먹선들이 똬리치듯 스며들게 한 <붓질> 연작이 공간 속을 떠돌 듯 펼쳐졌다. 이 1층 전시장 천장 바로 위로 사각형 입방체 구조물을 통째로 얹어 생겨난 2층에도 특이한 모양새의 숯 작업들이 기다린다. 숯 덩이 조각들을 벽면에 평면 회화처럼 붙여 길쭉하게 배열해놓고 표면에 흰 선을 죽 그은 것으로 마무리한 신작 <불로부터-흰 선>이다. 유한과 무한, 흑과 백,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경계를 명상하게 하는 새로운 틀거지의 숯 모자이크 회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작가는 바닷가와 맞닿은 화랑 입지를 감안했다. 전시 공간 자체를 큰 화면으로 보고 해운대 밤 바다에 비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며 작업했다고 한다. 내부 공간을 화폭으로 바꿔 전시장 바닥과 벽 등에 설치작품 같은 수묵작업을 펼쳐내는가하면 특유의 재료 숯덩이를 그림의 표면 이미지처럼 만들거나 청동 조형물로도 재현했다. 전시에서 부각된 이런 시도들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심연과 서구 모더니즘 사이의 영역을 형상화해온 그의 작업 층위는 한층 깊고 넓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감상의 눈길은 작가의 신작에만 머물지 않는다. 화랑 정면 테라스와 진입계단 앞에 작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운치있게 심어 소담한 멋을 낸 이성경 작가의 조경 디자인 작품은 수년 전 화랑 안쪽 공간에 펼친 작은 석물 정원과 더불어 또다른 수작으로 꼽을만하다. 1층 원형 테라스 공간 위에 통창을 앞면에 틔운 입방체 전시장을 그대로 내려앉히는 방식으로 2층 공간을 신축한 가가건축사무소(대표 안용대)의 리모델링 얼개를 살피는 재미도 있다. 전시는 7월3일까지 열린다.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