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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산, 누드, 부산…시각예술의 열락 속으로

등록 2022-08-20 12:08수정 2022-08-27 23:56

‘강추’ 주말 전시들…작고한 유영국 산 그림
사진가 민병헌·박종우의 몸의 미학·부산의 추억
산 능선이 맞닿는 부분을 색조의 미묘한 바림과 스밈으로 표현한 유영국의 1968년 작 <작업> 중 일부분.
산 능선이 맞닿는 부분을 색조의 미묘한 바림과 스밈으로 표현한 유영국의 1968년 작 <작업> 중 일부분.
유영국의 산 그림과 박종우의 부산 굴뚝, 그리고 민병헌의 누드….

한국 현대 회화사의 큰 봉우리로 꼽히는 작고 대가와 현재 사진 분야 최고수로 꼽히는 두 생존 대가들의 수작들 잔치가 이번 주말(21일) 끝난다. 서울 북촌 소격동 국제갤러리 전관의 산 그림 거장 유영국(1916~2002)의 20주기 전 ‘유영국의 색깔들’과 성수동 갤러리 구조의 민병헌 사진전, 부산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의 박종우 사진전 ‘부산 이바구’다. 대가들의 눈썰미와 감각을 나눌 수 있는 세 작가의 작품 잔치가 여름 끝물에 시각예술의 열락을 선사한다.

떨림이 감동이다! 국제갤러리 K1~3관의 유영국 전시회는 거장의 미세한 붓질 흔적들을 주시해야 한다. 하늘 아래 깔린 산과 능선의 색면과 경계에서 리듬감 있게 떨리며 펼쳐놓은 흔적이 애호가들의 눈을 전율하게 한다. 1960년대 중후반 미술 제도와 연관된 일체의 활동을 접고 불가사의한 에너지를 풀어냈던 전성기 작품들은 산들이 얽혀 원색들을 섞으며 토해내는 격정적인 기운이 일품이다. 작가의 필력이 절정의 역량을 보이는 1960년대의 크고 작은 산 그림들이 고갱이 격이다. 웅장한 산세와 세부에 보이는 색조의 절묘한 스밈과 어울림, 붓질의 미묘한 율동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약동하는 이미지를 펼쳐놓았던 전성기 작품들과 70년대 초반 수작들을 중심으로 90년대 말년기 작업들과 40년대 초 경주 남산 불상에서 찍은 전위적 구도의 사진 아카이브 작업들까지 두루 볼 수 있다. 60년대 걸작들을 처음 대거 출품해 화제를 모았던 지난 2016년 덕수궁미술관의 회고전 ‘유영국, 절대와 자유’ 못지않게 황홀한 감흥을 안겨주는 명품전이다.

민병헌 작가의 ‘몸’ 연작 중 여인의 뒤태를 담은 누드 사진.
민병헌 작가의 ‘몸’ 연작 중 여인의 뒤태를 담은 누드 사진.
젊음의 거리가 된 서울 성수동 거리의 구조갤러리에 가면 여성 누드상이 농밀한 화면 속에서 빚어내는 몸의 미학을 밀도감 높은 사진들을 통해 만나게 된다. 촬영과 현상에서 철저하게 개인 수작업만을 하면서 수묵화 같은 톤의 작품들로 팬덤을 만든 한국 사진판의 대표작가 민병헌씨. 그가 잘 보이지 않았던 <몸> 시리즈의 여체 사진들을 새로 프린트해 대거 내걸었다. 기존 전시에 보이지 않았던 <몸> 연작의 숨겨진 작업들이 크고 작은 사이즈로 내걸렸고, 애호가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그의 아이템 중 하나인 남녀의 성애 장면을 담은 작업들도 상당수 나왔다. 꽃과 숲, 폭포, 물 등을 포착한 기존 수작들도 2~4층 공간에서 여유 있게 볼 수 있어 애호가들에겐 즐겁고 널널한 감상 체험이 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주요 연작인 ‘몸’ ‘꽃’ 등 작품 60여점과 ‘몸’ 연작의 에디션 북 2종을 내놓았다. 뮤지션 선종표가 작품에 헌정한 3곡도 함께 들어볼 수 있다. 누드와 성애 작품들이 상당수라 19살 이상만 관람이 가능하다.

‘부산 이바구’전에 나온 박종우 작가의 부산 풍경 사진 중 일부. ‘까꼬막’으로 일컬어지는 경사진 산기슭에 자리한 부민동의 울긋불긋한 원색조 집들과 삐죽이 솟은 낡은 목욕탕 굴뚝, 원경의 남항대교와 그 아래 푸른 바닷빛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부산 이바구’전에 나온 박종우 작가의 부산 풍경 사진 중 일부. ‘까꼬막’으로 일컬어지는 경사진 산기슭에 자리한 부민동의 울긋불긋한 원색조 집들과 삐죽이 솟은 낡은 목욕탕 굴뚝, 원경의 남항대교와 그 아래 푸른 바닷빛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부산 해운대 수영만 요트장 부근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는 <한국일보> 사진기자 출신의 다큐사진가 박종우씨가 포착한 부산의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박 작가는 <휴전선> 사진연작과 세계 소수민족 문화기행으로 알려진 한국 다큐사진계의 실력자이자 건실한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로 꼽힌다. 그의 개인전 ‘부산 이바구’는 시장, 해변, 산동네 등 부산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면서 포착한 거리 사진의 형식으로 부산만이 지닌 특별한 공간들을 보여준다. 경사가 급한 비탈을 일컫는 ‘까꼬막’에 다양한 계단을 올리며 원색 페인트를 칠한 집들로 채워진 산동네, 집집마다 옥상에 있는 파란색 물탱크, 유난히 많은 점집 등 부산만이 간직한 공간적 풍경들을 프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집어냈다.

이 전시는 한국 사진계 주요 작가들이 1년 이상 부산 현지를 돌면서 찍은 사진들을 선보여온 이색 기획전이다. 원래는 ‘부산 참견록’이란 공식명칭을 붙였다가 수년 전 ‘부산 프로젝트’로 바꿨다. 올해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박 사진가는 한국전쟁 당시 할머니와 부친이 헤어졌다가 부산에서 극적으로 상봉한 가족사와 방학 때마다 이모 집에 놀러왔던 추억이 어린 부산을 휴전선 같은 기존 작업과 다르게 가슴 시린 정념을 깔면서 기록해 놓았다. 부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으나 이젠 고층건물 숲속에서 도시의 화석이 되고 있는 목욕탕 굴뚝의 경관을 유난히 도드라진 소재로 클로즈업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다큐사진가의 안목과 식견을 서늘하게 드러낸 전시 패널 글들을 읽는 묘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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