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임계 맏형 고재경·유진규씨
8일부터 대학로 무대에…동시에 작품 올려
8일부터 대학로 무대에…동시에 작품 올려
마임은 슬프다. 루이14세가 연극에서 언어를 앗아간 뒤, 마임은 슬픈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300년이 넘게 흐른 지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임은, 예술은 커녕 공연 장르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가게 개업식 날, 늘씬한 미녀들의 현란한 몸짓 사이에서, 얼굴을 희게 분칠하고 눈가에 검은 눈물 방울을 찍은 삐에로로 기억될 뿐. 공연으로서의 마임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대학로에서 두 마임이스트의 작품이 동시에 막을 올린다. 마임 생활 35년차 유진규(54)씨와 20년차 고재경(37)씨. 유씨가 춘천마임축제를 만들고,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 마임의 1세대라면, 고씨는 한국마임협의회 사무국장으로서 배우 및 일반인들에게 8년째 마임을 가르치고 있는 마임계의 중추다. 웃음 속에 서글픔이=마임이스트 고재경씨는 “흥행하는 마임 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쇼 하는 사람”으로 불려도 관계가 없단다. “무대가 없더라도 관객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광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의 마임은 흥행성이 있다. 그가 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곡예를 펼칠 때 객석에서는 히~야하는 탄성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을 때(<황당>)는 와르르 웃음이 터져나온다. 쓸쓸한 광대로 살아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줄 때(<기다리는 마음>)는 서글픔이 번진다. 물론 가벼운 웃음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서울에서만 살았던 유씨가 춘천으로 향한 것은 지난 1981년.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과 복잡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껴 소를 키우며 살겠다고 귀농했지만, 소값 파동으로 망해버렸다(그는 건국대 수의학과를 다니다 연극에 미쳐 때려치운 적이 있다). 강원대 앞에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카페를 차려놓고, 예술을 핑계로 술을 마시며 살았다. 그러나 마임 1세대로서의 책무감이 그를 옭아맸다. “마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데, 후배들이 모두 너만 쳐다보고 있다”는 친구의 압박을 뿌리치지 못하고 1987년 재기 공연을 시작했다. 유씨는 지난 1월27일부터 29일까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마임축제에 다녀왔다. “소극장 공연이었지만, 공연 2주일 전에 표가 매진됐고, 추가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어요. 한국의 비주얼 마임으로서 세계 무대에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8~12일 사다리아트센터. (02)382-5477. 9일(마임 데이)에는 2만원에 두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