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치현(왼쪽)과 이정석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의 한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둘은 오는 2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어떤가요 #2’ 무대에 함께 선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이치현(67)과 이정석(55). 공통점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두 가수가 한 무대에 선다. 오는 20일 오후 8시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대중음악 시리즈 공연 ‘어떤가요 #2’의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은 나이 차가 12살인데다, 데뷔 연도도 이치현 1979년, 이정석 1986년으로 7년 차이다. 밴드 ‘벗님들’로 활동한 이치현은 록을, 솔로 가수로 활동한 이정석은 발라드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다른 점 못지않게 공통점도 많다. 우선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가 겹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 히트시켰던 노래들이 오랜 세월을 견뎌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다는 점이 닮았다. 지난 11일 두 사람을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둘이 함께 인근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난 참이었다.
“정석이와 내가 같이 무대에 서는 것을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세대도 장르도 다르니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예전에 방송국에서 정말 많이 만났거든요. 방송국이 몇 개 없던 시절이라 여기저기 음악 방송 출연하러 가면 대기실에서 꼭 마주쳤어요.”(이치현)
가수 이치현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의 한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이치현은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에 듀엣 벗님들로 나갔다가 인기상을 받았다. 이듬해인 1979년 기획사와 계약하고 밴드 벗님들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오랜 무명 생활을 해야만 했다. 본격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1986년 발표한 5집부터였다. ‘사랑의 슬픔’이 큰 사랑을 받았고, 1988년 발표한 6집의 ‘집시여인’도 연이어 크게 히트했다.
이정석은 고교 시절 음악에 빠져 밴드를 결성하고 기타를 쳤다. 피어선신학대(현 평택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한 그는 1986년 엠비시(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자신이 작곡한 ‘첫눈이 온다구요’로 금상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듬해인 1987년 발표한 첫 앨범에서 ‘사랑하기에’가 크게 히트했고, 이어 2집(1988)에서 조갑경과 듀엣으로 부른 ‘사랑의 대화’, 3집(1989)의 ‘여름날의 추억’ 등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 당시 정석이는 스탠더드한 깔끔함이 있었어요. 목소리의 호소력도 좋고, 비브라토도 좋았죠. 방송국에서 마주치면 서로 인사하며 ‘나중에 밥이나 한번 먹자’ 했는데, 실제로 그러진 못했어요.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밴드를 하고 있어서 방송 끝나면 밴드 멤버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거든요.”(이치현)
가수 이정석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의 한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당시 저는 이치현 선배님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기 때문에 밴드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그때는 방송국에 가면 대기실이 하나여서 모든 출연 가수들이 거기서 만났어요. 그런데 저는 어색해서 대기실에 있지 않고 밖에 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선배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죠.”(이정석)
“나도 그랬어요. 어색해서 대기실에 잘 안 있었고, 대기실에 있을 때도 기타만 치고 대화를 별로 안 했죠. 그땐 왜 그렇게 까칠했는지 몰라. 정석이와 내가 친해질 기회는 없었지만, 서로의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가요계 장르가 바뀌면서 우리 같은 가수들은 점점 소외됐죠.”(이치현)
1992년 ‘난 알아요’로 혜성같이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많은 걸 바꿔놓았다. 가요계의 중심을 발라드에서 댄스음악으로 옮겼고, 이후 아이돌 음악이 방송가를 휩쓸면서 80년대에 사랑받았던 가수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80~90년대 명곡들이 최근 다시 사랑받고 있다. 리듬 위주의 댄스음악에 지친 대중은 멜로디가 선연히 살아있는 옛 노래들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젊은 가수들이 예전 명곡을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늘었고, 이런 흐름 속에서 원곡 가수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가수 이치현(왼쪽)과 이정석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의 한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나란히 섰다. 둘은 오는 2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어떤가요 #2’ 무대에 함께 선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사실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을 뿐, 두 사람은 늘 음악을 놓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대를 잃었던 시기를 지나 이제 다시 왕성하게 공연하고 있다. 이치현은 제주에서 공연하고 서울 잠깐 찍었다가 다시 속초로 이동해 공연하는 등 연일 강행군을 하고 있다. 그는 “어제는 연천으로 야외 공연을 갔다 왔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콧물도 나오고 했다. 그래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반려동물에게 도움을 주는 공연이어서 굉장히 보람 있었다”고 했다.
기부 콘서트라면 이정석이 더욱 열심이다. 그는 지난 2일 한 콘서트 수익금 1000만원을 ‘꿈수저청년장학기금’에 기부했다. 이정석은 2015년부터 위안부 할머니, 소아암 환자, 저소득 청소년 등을 위한 기부 콘서트를 꾸준히 펼쳐왔다. 그는 “지난 공연 때 2시간 넘게 노래한다는 게 쉽지 않아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즐겁고 행복하다. 요즘은 기부하는 맛으로 음악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처음 같이 서는 무대가 너무 기대된다”는 둘은 이번 공연에서 각각 자신의 히트곡 6곡씩 들려주고 라이너스의 ‘연’을 함께 부른다. 가수 이상우, 황규영이 스페셜 게스트로 함께한다. 공연을 주최하는 마포문화재단은 마포구 소상공인과 마포구 골목상점 영수증(전 업종 해당, 프랜차이즈 직영 제외)을 제시한 관객에게 티켓 값을 40% 깎아준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