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의 다섯 번째 앨범 <트라이앵글>에는 둔탁한 수공예품이 들어있다. 여러 장르에서 뽑아낸 매끈한 소리로 한국에서 일렉트로니카를 알리는 데 한몫 한 그들인데 말이다. 무딘 칼로 툭툭 처낸 듯한 리듬의 거친 단면엔 손때 묻은 처연함이 있다.
일렉트로니카 ‘선두주자’
이번엔 단순·묵직하게
슬픔 다독이는 감성은 여전
타이틀곡 ‘숨길 수 없어요’와 ‘님의 노래’에는 프로그래밍 대신, 세션으로 참여한 신석철의 드럼 연주가 단순하고 거칠게 뛴다. 리듬은 고집스럽게 철컥거린다. 기타와 베이스는 묵직하게 뒷받침한다. ‘님의 노래’엔 아코디언과 멜로디언이 얽혀 1940년대 가요처럼 애수를 보탠다. “귀가 단순하고 어쿠스틱한 걸 찾아요.”(조원선·34·키보드·보컬) “지난 앨범에선 기계적인 느낌을 내려고 악기 연주를 녹음한 뒤 잘게 잘라 편집해서 썼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어요. 기타·베이스·드럼도 한번에 간 경우가 많아요.”(지누·35·베이스·프로그래밍)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만들었죠.”(이상순·32·기타)
이번 앨범 앞자락에 놓인 곡들은 라틴 리듬을 현란하게 버무린 3집 <선식>이나 세련된 일렉트로니카를 내세운 4집 <앱솔루트>보다 거슬러 올라가 록의 빛깔이 새나오던 1·2집을 닮았다. “일렉트로니카는 신선한 분위기를 만들지만 때론 중심 없게 느껴지기도 해요. 추억할 만한 멜로디나 노랫말이 잡히지 않죠.”(지누)
앨범마다 신선하지만 그 밑바닥엔 ‘롤러코스터’의 감수성이 흐른다. 내지르지 않지만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비애 같은 것들이다. “그녀의 이름은 몰라요, 늘 그 시간, 그 자리에, 어쩌면 아무도 나밖엔, 그녀를 모르는 것 같아”(‘그녀이야기’·3집)에 오롯한 소외감은 기타 연주에 실린 ‘아무도 모른다’에도 또렷하다. “세상은 너를 사랑한다고 그런 말은 제발 하지마세요.~” 도시 사람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밑자락에 깔려 있다. “멍하게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봐요. 같이 수다 떨다 한 사람이 화장실 간 사이 남은 이의 표정 같은 것이요. 누구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조원선)
사실 소통 불가능을 노래하는 건 구태의연하다. 닳고 닳은 만인의 주제인 까닭이다. ‘롤러코스터’의 음악이 매력적인 건 굳이 노랫말을 듣지 않더라도 형식이 이미 많은 말을 한다는 데 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반복적인 멜로디는 어떤 결론을 향해서도 달려가지 않는 폐곡선이다. 잡종교배인 그들의 음악을 한 낱말로 정의할 만한 정답은 없다. ‘아이 캔트 히어 유’(4집)나 이번 앨범 사이 사이 끼어드는 일상적 소음은 볼 수는 있으나 끼어들 수는 없는, 유리벽 너머 세상을 향한 흘깃거림이다.
이런 감성은 꽤 공감을 샀다. 1999년 딱 3천장만 찍은 첫 앨범은 하루만에 다 팔려나갔다. 피시 통신 입소문 덕이었다. “당시엔 댄스, 발라드, 록만 있었어요. 다들 더 강렬한 것만 바랐어요. 인기 요소를 버무려 한번 들으면 바로 귀에 팍팍 꽂히는 것들이요. 우린 그저 그 중간의 밋밋한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지누) 윤종신, 이승환 등의 앨범에서 작·편곡, 기타를 맡았고 <엉뚱한 상상> 등 솔로 앨범을 내놨던 지누와 ‘베이비 블루’라는 그룹의 멤버였던 이상순 등은 이렇게 뭉쳐 앨범마다 개인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느낌을 담았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들은 매혹적인 그물을 펼쳐 요즘 사람들의 슬픔을 낚아 올린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한 가지 시간이 잘도 흘러가 주는 것”(‘다시 월요일’)이라면서도 눈물 담은 기계적인 목소리로 “내일도 십년 전에도 괜찮았어요”(‘괜찮아요’)라고 다독인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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