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을 맞고 쓰러진 교황의 모습을 묘사해 논란을 일으킨 카텔란의 1999년작 설치조형물 <아홉번째 시간>.
“지난 시절 국립미술관은 사실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네요.”
국내 최고 미술관으로 꼽히던 삼성가 리움미술관의 한 전직 관계자는 한탄을 털어놓았다. 대중의 주목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었다. 2021년 4월 삼성가의 이건희 회장 컬렉션 국가 기증 이후 국립미술관과 국립박물관의 기증 컬렉션 공개전은 지방 순회전으로 이어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인 2021년 10월 재개관한 리움은 소장품 컬렉션전, 아트스펙트럼전, 미디어아티스트 이안 쳉 개인전 등을 잇따라 열었으나 과거처럼 미술계 주요 이슈를 선점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시들할까? 전시기획이 대중의 관심과 동떨어진 탓일까?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지하 기획전 공간의 문제는 없을까? 리움이 새해 들어 공간을 바꾸는 승부수를 던진 데는 이런 문제의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런 고민을 풀어줄 구원투수로 초빙한 작가가 바로 지금 세계 현대미술의 최고 스타로 꼽히는 작가라면!
바닥을 뚫고 고개를 디민 자화상 <무제>(2001).
리움은 2004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네덜란드 건축 거장 렘 콜하스가 설계한 지하층과 블랙박스로 구성된 기획전시장(아동교육문화센터) 대신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1·2층 상설 현대미술컬렉션 전시장에서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첫 한국 개인전 ‘위’(WE)를 지난 1월31일부터 시작했다. 가구 디자이너 출신의 카텔란은 2019년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 당시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여 설치하고 <코미디언>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내놓았다가, 다른 전위예술가가 이 작품을 먹어버린 해프닝으로 유명하다. 이 바나나 작품을 12만달러(약 1억6천만원)라는 거액에 판 일은 이후 21세기 현대미술사에 주요 사건으로 등극했다.
리움 전시장에는 회색빛 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 정문 앞과 로비에 널브러진 노숙자의 상, 운석에 맞아 넘어진 교황의 상, 대가리를 벽에 처박거나 천장에 매달린 말의 박제된 사체 상, 주검들을 덮은 천으로 비치는 대리석제 조형물, 뒷모습을 소년처럼 꾸민 채 무릎 꿇고 기도하는 히틀러 상 등 발칙하고 일탈적인 작품 30여점이 나왔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형상성 뚜렷한 조형물들인데, 일부가 기형이거나 전체 얼개가 뒤틀린 몰골을 통해 삶에 얽힌 권력과 종교, 이념, 예술, 시장의 단면들을 일깨워주는 유머와 풍자의 묘미가 강렬하다.
거꾸로 선 경관 상 <프랭크와 제이미>(2002).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고학을 하면서 성장한 작가는 장의업체에서 주검을 닦고 염하는 작업을 상당 기간 했다. 이런 전력 때문인지 바닥 뚫고 고개를 디밀거나 정장 차림으로 침대에 누운 채 허공을 주시하는 자화상과 운석을 맞은 교황 상, 얼굴에 그늘이 진 채 거꾸로 선 두 경관 상 등에서는 권력에 깃든 삶과 죽음이란 화두가 날 선 도상들 틈새로 선뜩하게 엿보인다.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프랑스 페로탱 화랑에 전속된 작가로 미술 시장에서 작품 스캔들을 양산해온 ‘이슈메이커’임을 고려하고 볼 필요도 있다.
입구와 홀에 놓인 두 노숙자 상에서 도드라지지만, 삼성가의 안온한 전시장에 놓인 개념미술품들은 전복적이라기보다는 자극적이다. 원조 격인 마르셀 뒤샹의 문제작 변기가 1910년대 나왔을 때부터 파생된 개념미술의 이미지 놀이 성격을 더욱 배가시켰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20세기 전반기 미술가들이 지향했던 이념·관념의 뒤집기와 새로운 시대 미학의 창출과는 성격이 다른 팝아트적 개념미술의 세속화된 버전에 가깝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로 유명한 이탈리아 로마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해 제작한 구조물.
30점 넘는 실물들이 공수된 이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회고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주요 대표작을 망라해 삼성가 재력을 드러낸 자리가 됐지만, 상당수 작품들은 서랍이나 진열장 속 ‘오브제’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놓이는 장소마다 다른 맥락으로 재해석되는 카텔란표 풍자 미술의 묘미를 리움 공간에 맞춰 새롭게 풀어낸 흔적은 희박하다. 쓰러진 교황 상과 미켈란젤로 걸작인 시스티나 예배당을 축소한 구조물, 주검들을 덮은 듯한 대리석 덩어리들이 연속 배치된 2층 전시장 안쪽은 권력과 죽음, 삶 사이 긴장을 표상한 공간이지만, 실제론 관객들이 긴 줄을 서며 인증샷을 찍는 예배당만 부각됐다. 1·2층 각 전시실 난간과 바닥에 놓인 박제된 비둘기 떼도 원래는 살아 있는 비둘기 떼와 뒤섞어 전시했던 문제작인데, 분산된 장식 소품들처럼 연출됐다. 의외성이 핵심인 카텔란 작업의 매력을 온전히 음미할 수 없어 아쉽다. 7월16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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