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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90년대 한국 미술 새바람 이끈 문제작들, 30여년 만에 나왔다

등록 2023-04-04 07:00수정 2023-04-04 11:14

토탈미술관 이색 소장품 전 화제
토탈미술상 수상작들 한자리에
전시장 1층 들머리 현관에 설치된 고영훈 작가의 대작 &lt;땅&gt;(1991). 1회 토탈미술상 대상 수상작이다. 한국사 책에 맨홀과 삽, 목장갑 등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넣은 32년 전의 이 작품은 현재 작가의 화풍과는 현저한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 노형석 기자 <a href="mailto:nuge@hani.co.kr">nuge@hani.co.kr</a>
전시장 1층 들머리 현관에 설치된 고영훈 작가의 대작 <땅>(1991). 1회 토탈미술상 대상 수상작이다. 한국사 책에 맨홀과 삽, 목장갑 등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넣은 32년 전의 이 작품은 현재 작가의 화풍과는 현저한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고영훈, 조덕현, 윤동천, 김근중, 제여란, 이기봉…

요즘 국내 화단과 화랑가에서 개성적인 화풍으로 고정 컬렉터 층을 보유한 유명작가들이다. 이들이 30~40년 전 청년 시절 그린 작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 화풍과 어떤 면에서 통하고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을까.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관장 노준의)에서 궁금증을 풀어주는 색다른 전시판을 꾸려놓았다. 지난달 초부터 열고 있는 ‘안녕하세요, 노준의입니다’란 제목의 소장품 기획전. 1991년 이 미술관에서 제정해 한국 미술판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술상으로 인정받으며 1997년까지 존속했던 토탈미술상의 1~5회 추천작과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1층과 지하 1~2층에 두루 소장품들을 내걸었다.

미술관 지하층을 내려보는 중층부 공간에 내걸린 유연희 작가의 1995년작 &lt;들판에 서다&gt;. 노형석 기자 <a href="mailto:nuge@hani.co.kr">nuge@hani.co.kr</a>
미술관 지하층을 내려보는 중층부 공간에 내걸린 유연희 작가의 1995년작 <들판에 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참여작가만 작고, 원로, 중견 통틀어 30명에 달하는 이 전시는 1층 들머리 공간부터 작품이 눈에 탁 걸린다. 백자 도자기를 사진보다 정밀하게 그리는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화단의 중견작가 고영훈씨가 32년 전 그린 <땅>이란 제목의 대작은 1회 토탈미술상 대상 작이다. 세로 2m, 가로 3m를 넘는 대형 화폭에 허연 기호와 얼룩들이 난무하는 한국사 책 앞표지와 책등, 뒷면이 덜렁 놓였고, 그 위로 맨홀 뚜껑과 목장갑, 삽이 극사실적인 이미지로 덧붙여졌다. 마치 당대 민중미술의 오브제 작업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의 도상들은 미니멀한 단색조 구도에 사물들을 재현하는 현재 화풍과는 조형적 구도나 작가의식 차원에서 현저한 간극을 드러낸다. 책등 아래 출판년도와 출판사가 들어갈 자리에 ‘1991년 KO YOUNG HOON’이란 제작연도와 작가 이름을 서명 대신 표기한 기지도 엿보인다.

조덕현 작가의 1991년 작 &lt;20세기의 추억&gt;. 당시 토탈미술상 1회 전의 수상작 후보로 추렸던 7점들 가운데 하나다. 노형석 기자 <a href="mailto:nuge@hani.co.kr">nuge@hani.co.kr</a>
조덕현 작가의 1991년 작 <20세기의 추억>. 당시 토탈미술상 1회 전의 수상작 후보로 추렸던 7점들 가운데 하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지하 1층으로 가면, 1932년 상하이 폭탄 의거 뒤 일제 군경에 끌려가는 윤봉길 의사의 사진을 옮겨 그린 대작이 먼저 맞는다. 한국 근현대사의 사진 장면들을 극사실적으로 옮긴 다큐멘터리적 회화 작업을 해온 조덕현 작가가 1991년 그린 <20세기의 추억> 연작. 윤 의사가 체포되어 끌려가는 사진 모사 그림 주위를 다기한 명도의 검회색빛 얼룩이 진 8개의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그 위에 17세기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화풍으로 바로크 미술의 전범이 된 거장 카라바조의 이름과 생몰년, 자신의 이름과 생년을 나란히 적어넣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현의 정신을 시대와 화풍을 초월해 이어받겠다는 강한 결의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은 사실상 발표를 중단한 이강희 작가가 96년 선연한 선으로 묘사한 고인돌 모습을 담은 <유적지-겨울>이 그 옆으로 조응하듯 붙어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관장을 지낸 석남 이경성이 먹으로 칼칼한 터치의 형상들로 그린 인물화. 노형석 기자 <a href="mailto:nuge@hani.co.kr">nuge@hani.co.kr</a>
국립현대미술관 초대 관장을 지낸 석남 이경성이 먹으로 칼칼한 터치의 형상들로 그린 인물화.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지하 1~2층의 크고 작은 30여년 전 작품들은 지금 컬렉터나 언론에 알려진 미술판 중견작가들의 숨은 과거의 면모를 탐험하는 공간이다. 짙은 원색의 물감덩이를 즐겨 쓰는 제여란 작가는 심심할 정도로 차분한 모노톤의 관조적인 화면을, 이기봉 작가는 몸에 화살이 박힌 듯한 시대 속 상처받은 휴머니즘의 이야기들을, 유연희 작가는 당시 한국 화단에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여성주의적 생태주의적 감수성의 일단을 들판에 선 여인의 서늘하고 예민한 얼굴상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초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이경성이 퇴임 뒤 그린 사람 그림도 처음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작고 작가 이승조의 대작 앞에 선 노준의 관장. 노형석 기자 <a href="mailto:nuge@hani.co.kr">nuge@hani.co.kr</a>
작고 작가 이승조의 대작 앞에 선 노준의 관장.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전시를 구상한 건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 파이프 형상의 연작으로 유명한 이승조 작가의 작품들을 대여해줬다가 돌려받을 때 곰팡이가 슨 것을 발견한 게 계기가 됐다. 노 관장은 “아예 토탈미술상 수상작을 포함한 주요 작품들을 꺼내어 바람도 쐬고 잘 꾸려 보여주자는 생각이 미쳐 전시를 만들게 됐다”면서 “참여 작가들을 초대해 과거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기획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9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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