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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연주하면 콩쿠르 우승?

등록 2023-06-19 10:45수정 2023-06-20 02:44

삼성문화재단 명품 악기 대여 연주자 선정
어머니가 재일동포인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는 삼성문화재단이 후원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삼성문화재단 제공
어머니가 재일동포인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는 삼성문화재단이 후원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삼성문화재단 제공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노래를 부르고, 과르니에리는 말을 한다.”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이 한 얘기다. 연주자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여성적, 과르니에리는 남성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정경화는 “아무리 슬퍼도 너무 고고해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스트라디바리우스), “울고 싶을 땐 땅바닥에 앉아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한 농부”(과르니에리)라고 두 악기의 소리를 비유했다. 처음에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다가 나이 들어 과르니에리로 ‘전향’하는 연주자들도 많다. 야샤 하이페츠가 대표적이다. 정경화도 초기엔 두 악기를 번갈아 사용하다, 후기엔 과르니에리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

명품 바이올린의 대명사로 통하는 두 악기는 수십억~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라도 쉽게 소유하기 어렵다. 특히 1700~1720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소리가 좋고 가격도 비싸다. 전 세계에 150대 정도밖에 남지 않은 과르니에리는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희소성이 더 크다. 국내에선 이들 악기를 소유한 삼성문화재단과 금호문화재단이 유망한 연주자들에게 일정 기간 대여해 주고 있다.

1997년부터 ‘삼성 뮤직 펠로우십’을 운영해온 삼성문화재단은 최근 악기를 대여할 4명의 연주자를 새로 선정했다. 어머니가 재일동포인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는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게 됐다. 앞서 클라라 주미 강에게 대여했던 그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23)는 1753년산 조반니 바티스타 과다니니,  비올라 연주자인 이해수(23)는 1590년산 ‘가스파로 다 살로’, 첼리스트 한재민(17)은 1697년산 ‘조반니 그란치노’를 쓰게 된다. 이들은 각각 최장 5년간 이 악기들을 사용할 수 있다. 재단 관계자는 “연주활동과 음반, 국제 콩쿠르 입상 실적 등을 바탕으로 음악계 전문가들의 추천과 검증을 거쳐 예술성과 음악 활동 전반, 발전 가능성 등을 검토해 선정했다”고 말했다.

악기 대여는 물론, 악기 보험료와 유지·관리비도 전액 재단이 지원한다. 7대의 명품 현악기를 소유하고 있는 삼성문화재단은 지난해에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에게 1725년산 과르니에리 델 제수, 노부스콰르텟의 첼리스트 이원해에게 1715년산 마테오 고프릴러 첼로를 대여해줬다.

명품 악기를 쓰면 같은 정말로 소리가 좋아지고 콩쿠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연주자에게 악기는 성악가의 성대와도 같다. 사람의 목소리처럼 악기마다 미세하게 음색이 다르다. 나무판 두께가 1㎜만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난다고 한다. 연주자와 악기 사이에도 ‘찰떡궁합’ 같은 게 있어서 연주자마다 악기를 고르는 기준이 다르다. 연주자들 사이에선 좋은 악기 만나는 게 좋은 배우자 만나기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는 자신과 1727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부부 관계’라고 표현하곤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8)은 2014년부터 금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8)은 2014년부터 금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우연인지 몰라도 악기를 바꾼 이후 콩쿠르 성적이 확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8)이 대표적이다. 국산 바이올린을 사용하던 그는 2014년 금호문화재단으로부터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대여받았다. 이 악기 덕분인지 그해 열린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고, 이듬해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2016년 택시 안에서 요절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도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대여받은 뒤 2004년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2006년 최예은의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 2위, 김봄소리의 2013년 에이아르디(ARD)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도 크레모나로 일군 성과였다. 파르마, 투린도 뒤지지 않는다. 투린으로 연주한 클라라 주미 강이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를 했고, 과다니니 파르마로 연주한 조가현은 2009년 워싱턴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명품 바이올린 8대와 첼로 1대, 피아노 1대를 보유 중인 금호문화재단도 1990년대 후반부터 연주자들에게 악기를 후원해왔다. 27살 이하 젊은 음악가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어 악기 수혜자를 결정한다.

지난해 윤이상 국제콩쿠르, 2021년 에네스쿠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17)은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1697년산 조반니 그란치노 첼로를 대여받았다. 삼성문화재단 제공
지난해 윤이상 국제콩쿠르, 2021년 에네스쿠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17)은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1697년산 조반니 그란치노 첼로를 대여받았다. 삼성문화재단 제공

물론 좋은 악기가 좋은 연주를 담보해주는 건 아니다. 명품 바이올린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훨씬 값싼 현대 바이올린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2010년 프랑스 파리대학 연구팀이 전문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니에리, 그리고 제작된 지 1주일밖에 안 된 신품 바이올린을 각각 연주해본 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악기를 고르게 했는데 신품 악기를 고르는 연주자가 더 많았던 것. 바딤 레핀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악기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 결국 악기는 연주하는 사람에게 달렸다”며 “어떤 소리를 만들지에 대한 연주자의 비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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