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재일동포 3세인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가 19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랜들 구스비입니다.”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작은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는 서툴지만, 한국말로 인사했다. 자신을 ‘절반은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가 재일동포 3세 한국인,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간담회를 마친 뒤에도 한국말로 “콘서트장에서 만나요”라며 웃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연주하게 돼 매우 흥분됩니다. 어머니와 가족들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에 가치 있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는 “나와 문화적으로 연결된 한국의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라며 “굉장히 기대되고 흥분된다”고 했다. 그는 20일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과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연다.
미국과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는 ‘뜨거운’ 연주자다. 뉴욕과 런던 두 곳에 매니저를 둘 정도다. 런던 사우스뱅크센터도 최근 그를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와 함께 올해와 내년 시즌에 활동할 상주연주자로 선정했다.
그에게 눈을 돌리게 하는 것들 가운데 ‘뿌리’를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데카 레이블에서 발표한 앨범이 ‘뿌리(Roots)’다. 음반에서도, 공연에서도 그는 흑인과 아시아 작곡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최근 발표한 2집 앨범에도 흑인 작곡가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협주곡을 넣었다.
이번 공연도 예외가 아니다.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2악장이 흑인음악 ‘블루스’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도 흑인과 관련이 있다. 구스비는 “베토벤은 원래 이 작품을 흑인 바이올린 연주자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했고 그와 초연까지 했지만 나중에 결별하고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했다”며 “나는 이 작품을 ‘브리지타워 소나타’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흑인 작곡가는 물론, 한국과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작곡가들의 곡을 찾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 남부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자란 그는 바이올린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레슨을 받기도 어려웠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친구들도 찾기 어려웠다. 14살에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이츠하크 펄먼의 캠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뛰어들었다. “테크닉은 무의미하다. 음악으로 무얼 얘기하고자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테크닉을 갈고 닦아야 한다.” 펄먼의 이 가르침이 그의 음악 행로에서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그는 이날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1번을 10분 남짓 연주했다.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이 최근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다. 골프를 즐기며 타이거 우즈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 악기에 ‘타이거’란 애칭을 붙여줬다. 그는 “2집 앨범까지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를 써서 녹음했다”며 “밝은 음색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어두운 색조의 과르니에리는 음색 차이가 크다”고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가 최근 발매한 2집 앨범. 유니버설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