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윌리엄 크리스티가 이끄는 프랑스 시대악기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 인천아트센터 제공
서울에서 벗어난 지역의 공연장이 독자적, 차별적 콘텐츠로 승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2018년 인천 송도 신도시 바닷가에 들어선 ‘아트센터인천’이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는 10월과 11월 공연은 반드시 이곳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인천아트센터 유일 콘텐츠’로 채운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엔리코 파체, 프랑스와 영국을 대표하는 시대악기 연주단체인 레자르 플로리상과 잉글리시 콘서트 등이 대표적이다. 헨델 오페라 초연 공연도 돋보인다.
요즘 ‘섭외 1순위’로 꼽히는 독일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쇼트(47)는 하루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1~6번)을 들려준다. 10월15일 오후 1시와 5시, 두 차례로 나눠서다. 서울 롯데콘서트홀(11일)과 대전 예술의전당(12일)에서도 베토벤과 브람스의 소나타를 연주하지만, 인천과 선곡이 다르다. 직접 작곡도 하는 그는 앙드레 프레빈(1929~2019)에게서 첼로 협주곡을 헌정받은 첼리스트다.
56살 동갑내기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와 엔리코 파체(피아노) ‘명품 듀오’도 오직 이곳에서만 공연(10월17일)한다. 카바코스는 작곡가 진은숙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 받은 연주자. 카바코스-파체 듀오가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은 2013년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파체는 서울 예술의전당(10월25일)과 춘천 백령아트센터(10월22일)에서 첼리스트 양성원과도 합을 맞춘다.
인천아트센터는 당대의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하는 ‘시대악기 연주’에 특화된 독보적인 공연들도 선보인다. 먼저, 소프라노 도로테 밀즈(52)와 리코더 연주자 슈테판 테밍(45)의 공연(10월20일)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공연. 바로크 음악의 ‘스타급 성악가’ 도로테 밀즈는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헤와 많은 음반을 녹음했다. 테크닉이 화려하고 쇼맨십도 갖춘 리코디스트 슈테판 테밍은 현대곡들도 자주 초연한다.
인천아트센터에서 하루 두 차례로 나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1~6번)을 연주하는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쇼트. 인천아트센터 제공
지휘자 윌리엄 크리스티(79)가 이끄는 시대악기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도 바흐의 ‘요한수난곡’을 이곳에서만 연주(11월25일)한다. 크리스티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공부했지만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가 1979년 창단한 레자르 플로리상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음악 악단으로 성장했다. 30년 전 서울 예술의전당 개막 공연에 참여한 관록의 앙상블이다.
헨델의 오페라 ‘로델린다’도 국내에서 초연(11월28일)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삽입돼 친숙해진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mio caro bene)’가 나오는 오페라다. 무대 장치 없이 진행하는 ‘콘서트 오페라’ 형식이긴 해도 영국의 대표적 시대악기 앙상블 ‘잉글리시콘서트’가 연주한다. 1973년 창단된 이 고음악 앙상블을 지휘자 해리 비켓(62)이 이끌고 내한하는데, 이들은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과 헨델의 오페라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로델린다’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인천아트센터는 2019년에도 헨델의 ‘천지창조’와 ‘메시아’ 등 대규모 바로크 음악을 연달아 공연했다. 이곳이 ‘시대악기 연주자들의 성지’가 된 사연이 있다. 연주한 이들마다 ‘시대악기에 최적화된 음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천아트센터에서 헨델의 오페라 ‘로델린다’를 국내 초연하는영국 시대악기 앙상블 잉글리시 콘서트 오케스트라. 인천아트센터 제공
4년 전 이곳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공연했던 지휘자 윌리엄 크리스티도 이곳의 음향을 기억하며 올해 공연 제안에도 선뜻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이곳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와 공연했던 지휘자 해리 비켓도 시대악기 연주를 품어내는 이곳의 풍성한 음향에 감탄했다고 한다. 박지연 공연기획팀장은 “1700여석 콘서트홀을 채우는 게 쉽지 않지만 내실 있고 차별적인 공연을 쌓아가면 언젠가 관객이 알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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