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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소리를 색깔로 느끼는 피아니스트, 빨간색 바흐 들고 찾아왔다

등록 2023-12-14 14:54수정 2023-12-14 19:20

말 배울 때부터 음이 색깔로 보여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발표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은 “14살에 굴드의 연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을 때 감각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은 “14살에 굴드의 연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을 때 감각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색깔로 표현하면 빨간색이나 오렌지색이지요. 지(G)조 조성이니까요.”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39)에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붉은색 계열로 보인다. 그는 소리를 색깔로 감각하는 ‘색청 피아니스트’다. 14일 서울 강남구 거암아트홀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갈색 정장을 가리키며 “갈색은 ‘디(D)조 조성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청각과 시각을 연결하는 능력은 거듭된 훈련을 통해 얻은 게 아니다. 말하기를 배웠을 때부터 소리를 색깔로 느꼈다. 그에게 C조는 흰색, E조는 녹색, F조는 파란색이다. 그는 “두뇌가 자연스럽게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며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소리와 색깔을 연결짓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며 웃었다. “색청은 제가 음악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영향을 줬어요. 제 안 깊숙이 내재한 강렬한 음들이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되거든요.”

그는 최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냈다. 오는 16일까지 서울·통영 등 5개 지역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지난 8월 시작한 세계 투어의 일환인데, 벌써 88차례나 이 곡을 반복해 연주했다. 이 곡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태양계와 비슷해요. 아리아를 중심에 두고 각각의 논리를 지닌 30개의 위성이 주변을 공전하는 거죠.” 이 곡은 주제 ‘아리아’와 30개의 짧은 변주곡으로 구성됐다. 그는 14살에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의 연주로 이 곡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감각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시간여행을 나온 바흐와 공동창작자가 된 느낌으로 이 곡을 연주한다”며 “인간의 연약함과 강인함, 세상을 이해하는 데 이 곡이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 곡은 바흐가 러시아 백작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작곡했다는 속설도 있다. 올라프손은 “이 곡을 들으면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으니 그런 작곡 의도가 성공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특히 좋아하는 변주곡으로 13번과 25번을 꼽았다. “13번은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꿈꾸듯 자유롭고 부드러운 곡이죠. 가장 긴 25번은 비극과 고통이 담겼어요.” 이 곡을 담은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음반 중에 올라프손의 선택은 굴드의 1959년 잘츠부르크 실황, 머레이 페라이어(76), 언드라시 시프(70), 그리고리 소콜로프(73)의 음반이었다. 폴란드 출신 여성 연주자 반다 란도프스카(1879~1959)의 합시코드 연주도 빼놓지 않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39)는 음을 색깔로도 인식하는 ‘색청 피아니스트’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39)는 음을 색깔로도 인식하는 ‘색청 피아니스트’다. 유니버설 뮤직 제공

그는 콩쿠르 우승으로 스타가 된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고향 아이슬란드에서 한 차례, 줄리아드 재학 시절 두 차례의 콩쿠르에서 1등과 2등을 한 게 전부다. “2위를 했을 때, 1위가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극적 감정이 들더군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줄리아드 졸업 뒤엔 혼자 피아노 연습에 매달렸다. 자신의 연주를 녹음해 들어보고 장단점을 분석하며 스스로 개선해 나갔다. “어릴 때일수록 다양한 실험을 하며 자유롭게 연주해야 해요. 음악의 힘을 키우는 게 중요하죠.”

그는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자신은 사라지고 콩쿠르 홍보대사가 된다”면서도, 조성진과 임윤찬은 예외라고 했다. 두 사람은 “콩쿠르 우승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가 2018년 바흐 음악들을 모아 발표한 음반도 여러 음반상을 휩쓸었다. 이번 앨범 커버는 자신의 흑백 사진을 썼다. “어느 시대인지 구분하지 못하도록 흑백 사진을 골랐어요. 바흐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죠.”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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