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의 전통미 담은 뮤지컬
기국서의 호방한 실험연극
나란히 남산 국립극장 무대에
기국서의 호방한 실험연극
나란히 남산 국립극장 무대에
<셰익스피어 난장>의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해마다 이맘때면 남산 국립극장에서 〈셰익스피어 난장〉(~28일까지)이 펼쳐진다. 셰익스피어를 뒤집거나 해체하고, 현대화하거나 퓨전화하고, 다른 작품과 섞기도 한다. 한마디로 ‘셰익스피어 갖고 놀기’인 셈. 연출가들은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희곡의 바다에서 자신의 연출적 재능을 맘껏 펼쳐 보인다.
올해는 우리 연극계의 거장 오태석(목화레퍼터리컴퍼니)과 기국서(극단 76단)가 초청됐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오태석은 〈로미오와 줄리엣〉(10~19일)으로, 기국서는 〈리어왕〉으로 관객을 만난다. 두 작품 모두 스케일이 큰 작품으로, 소극장에서 옹색해진 우리 연극의 어깨를 활짝 추어올리는 흐뭇한 대작이다. 공연이 펼쳐지는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천장이 없는 원형극장이어서, 봄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예매는 국립극장 고객지원센터(02-2280-4115~6)로 하면 된다.
된장 냄새 구수한 〈로미오와 줄리엣〉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위 사진)이야말로 토종 뮤지컬이 아닐까.’ 연극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춤과 노래, 우리식 리듬이 어우러져 볼거리, 들을거리가 풍성하다. “모든 장면들이 엽서에 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독일 언론의 평은 과장이 아니다. 오방색의 커튼과 대청마루, 삼태기, 청사초롱, 십이지신, 현무도, 그리고 한복을 개량한 무대의상.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속에서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된다.
오태석 특유의 3·4조 대사는 귀에 척척 감기고, ‘생략과 비약’ 전법에 따른 재빠른 전환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오태석은 말한다. “죽음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 즉 첫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001년 독일 브레머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으며, 올해 1월에는 인도 국립연극원의 공식 초청으로 공연한 바 있다. 오는 11월에는 영국 바비컨센터의 기획공연을 앞둔 화제작이다.
연출의 힘 보여줄 〈리어왕〉
“저는 연극이 일단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연극은 너무 옹색해졌어요. 셰익스피어를 택한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배우들은 호방하고, 무대는 스펙터클하죠.”
기국서는 11년 전에도 이 작품을 한 적이 있다. 〈미친 리어〉라는 제목으로. 그런데 “그때는 아직 어려서 셰익스피어를 따라가기 급급했다.” 극단 76단의 30돌 기념공연으로 〈리어왕〉(오른쪽 위 사진)을 다시 택한 것은 두고두고 남는 아쉬움이 의무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기국서의 〈리어왕〉은 시대와 장소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의상을 입은 배우와 검정 양복에 스킨헤드족을 한 공간에서 만난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장황함은 날카로운 스피커의 해설로 압축·생략된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작품이거든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원작의 대사를 흉내내기보다는 그 원인을 찾게 되더라고요. 이를 테면 딸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도 아버지의 변덕스런 성격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죠. 연출의 실험이 여러가지 형태로 묻어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좀 쉽게 될 것 같아요. 이제 남은 건 관객의 심판이죠.”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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