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법론 잘 아는 10년 제자” 예술감독 부임 첫 정기공연 맡겨
“제 연축의 아버지같은 분이죠” 스승 닮아 맹렬파 세 작품 동시에
“제 연축의 아버지같은 분이죠” 스승 닮아 맹렬파 세 작품 동시에
국립극단 ‘우리 읍내’ 기획·연출하는 오태석·김한길
“그럴 땐 아예 파출소로 가는 거야. 제가 아침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러니 여기서 신세 좀 지겠다고, 깨워달라고 말이야.”
지난 14일 남산 국립극장. 제자는 또 꾸중을 들었다. 인터뷰 약속 시간에 두 시간이나 늦은 연출가 김한길(34·왼쪽)씨는 커다란 눈을 씀벅거리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동시에 연극 세 편을 준비하느라 이틀 밤을 새웠노라는 변명은 꺼내지도 못했다. 밤을 새운 것은 스승 오태석 국립극단 예술감독(66·오른쪽)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사제의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김씨가 서울예술대학 극작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 김씨는 오 감독을 아버지처럼 받들며 연극을 배웠다. 오 감독은 그런 제자에게 다음달 21일부터 보름 동안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극단의 〈우리 읍내〉 연출을 맡겼다.
“이 친구가 내 방법론을 잘 알아요. 생략과 비약, 구어체 사용 등을 말이죠. 10년 가까이 나하고 같이 연극을 했거든. 내가 국립극단 배우들과 작품 할 때도 조연출을 했기 때문에 배우들하고도 잘 알고.”
〈우리 읍내〉(손턴 와일더 작)는 오 감독이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된 이후 처음 기획해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다. 자신이 직접 각색해, 배경을 경기도 가평의 시골 마을로 바꿨다. 팔순이 넘은 배우 장민호를 비롯해 원로배우들이 즐비한 국립극단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재고, 눈치보고 하지 말고 처음 발상대로 과감히 나갈 필요가 있어요. 연필 뒤꼭지에 지우개가 있는 것은 지우라고 있는 거거든. (잘못이 있으면) 지우면 되니까. 배우들은 여태까지 쓰지 않던 새로운 ‘근육’을 쓰게 하면 고마워해.”
지난해 연극 〈춘천 거기〉로 선풍을 일으킨 김씨는 소극장 혜화동1번지 4기 동인이다. 지난 15일에는 두 편의 연극을 동시에 무대에 올렸다. 혜화동1번지에서 〈코뮌〉(~7월2일, 최철 작)을, 혜화동1번지로부터 10여m 떨어진 연우소극장에서 〈임대아파트〉(~7월16일, 김한길 작)를 상연중이다. 〈코뮌〉은 위장취업한 대학생 기영과 ‘공순이’ 인선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 건설”에 대해 말하는 21세기형 운동권 연극이고, 〈임대아파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4월 혜화동1번지 동인 페스티벌 무대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연장공연을 하게 됐다.
밤잠 줄여가며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삶의 방법론’이다. 그러나 제자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스승의 방법론을 형식적으로 차용하는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 특히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 주제를 웅숭깊게 다뤄온 스승에 견줘, 아직 신변잡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작품 세계가 그렇다. “선생님은 제게 연극의 의미를 알게 해준 아버지같은 분이에요. 선생님처럼 큰 주제를 다뤄보려고 해봤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나이가 좀 더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오 감독도 연극 〈내사랑 디엠제트〉를 오는 23일부터 7월9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역사의 비극이 역설적으로 빚어낸 생명의 공간 ‘디엠제트’(비무장지대)와 인간의 탐욕으로 생명이 사라질 위기에 몰린 새만금의 슬픈 운명으로부터 ‘동화적 희망’을 건져올리는 내용이다. 오 감독 특유의 상상력과 사회 의식이 빛나는 작품이다. 이들에게 연극은 유일한 생업이자 취미이며 특기다. 한시도 쉬지 않고 맹렬하게 연극을 만드는 스승과 제자 덕에 연극 동네는 오늘도 풍요롭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제공 국립극단
밤잠 줄여가며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삶의 방법론’이다. 그러나 제자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스승의 방법론을 형식적으로 차용하는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 특히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 주제를 웅숭깊게 다뤄온 스승에 견줘, 아직 신변잡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작품 세계가 그렇다. “선생님은 제게 연극의 의미를 알게 해준 아버지같은 분이에요. 선생님처럼 큰 주제를 다뤄보려고 해봤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나이가 좀 더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오 감독도 연극 〈내사랑 디엠제트〉를 오는 23일부터 7월9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역사의 비극이 역설적으로 빚어낸 생명의 공간 ‘디엠제트’(비무장지대)와 인간의 탐욕으로 생명이 사라질 위기에 몰린 새만금의 슬픈 운명으로부터 ‘동화적 희망’을 건져올리는 내용이다. 오 감독 특유의 상상력과 사회 의식이 빛나는 작품이다. 이들에게 연극은 유일한 생업이자 취미이며 특기다. 한시도 쉬지 않고 맹렬하게 연극을 만드는 스승과 제자 덕에 연극 동네는 오늘도 풍요롭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제공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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