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공연리뷰] 러셀 셔먼 피아노 리사이틀

등록 2007-10-15 14:00

그는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청중은 그의 정신을 들었다. 그 광대무변한 사유의 세계는 분석되기를 거부한 채 다만 엄습해올 뿐이었다.

14일 오후 세종체임버홀에서 펼쳐진 러셀 셔먼의 리사이틀에 참석한 청중들은 이 시대 진정한 거장의 음악을 듣는 행운을 누렸다. 그의 음악은 고도로 지성적이며, 또한 독창적이었다.

이번 리사이틀은 사랑과 열정을 담은 작품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리스트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104번은 연인을 향한 열렬한 마음의 표현이고,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는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사랑이며,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열정'은 폭풍 같은 열정 그 자체다. 셔먼은 이번 내한공연에서 사랑하는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변화경과의 피아노 듀오 연주를 계기로 '사랑과 열정'이라는 테마로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사랑과 열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사랑과 열정에 대한 '탐구'였다. 그는 결코 음악 속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음악을 관조하며 음으로 사유했다.

리스트와 슈만의 작품에서 그의 손끝에 의해 만들어진 악구들은 각각의 음악적 기능에 따라 전경(前景)에 배치되기도 하고 후경(後景)으로 물러나기도 하며 입체적인 음향을 만들어냈다. 악구를 해체하고 적절히 배치한 뒤 재조립하는 그의 작업은 마치 정교하고 단단한 건축물을 짓는 과정과 비슷했다.

휴식 후 셔먼은 아내 변화경과 함께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피아노 듀오로 연주했다. 피아노 듀오로는 그 느낌을 살려내기가 어려운 작품이지만, 셔먼과 변화경은 두 대의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추구하며 아름다운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듀오가 진행되는 동안 셔먼의 제자인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페이지 터너로서 스승의 악보를 넘겨주며 정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에서 셔먼은 독창적이고 비범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유자재로 템포를 변화시키며 의도적으로 규칙적인 맥박을 제거했다. 그는 이미 악보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연주는 '열정'에 대한 정의를 음악적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긴박감 넘치는 '열정'의 연주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 앉아있던 청중은 일제히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거장의 음악에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청중의 환호가 계속되자 셔먼은 앙코르곡으로 쇼팽의 야상곡 제5번과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제10번을 연주했다. 77세의 노장으로 믿겨지지 않는 강건한 터치와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독창적인 음악세계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는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변화경과의 듀오로 거슈윈의 '껴안고 싶은 당신'을 연주해 '사랑과 열정'을 주제로 한 이번 리사이틀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러셀 셔먼의 리사이틀은 17일 대구문화예술회관, 21일 서울 세종체임버홀, 23일 부산문화회관 등으로 이어진다.

최은규 객원 기자 (서울=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1.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2.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스승 잘 만난 제자, 제자 덕 보는 스승…손민수·임윤찬 7월 한무대 3.

스승 잘 만난 제자, 제자 덕 보는 스승…손민수·임윤찬 7월 한무대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4.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중증외상센터, 원작 소설 초월…주지훈 배우는 말 그대로 만찢남” 5.

“중증외상센터, 원작 소설 초월…주지훈 배우는 말 그대로 만찢남”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