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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낮은 음성, 깊은 울림

등록 2007-11-29 20:00수정 2007-11-30 15:40

루시드 폴
루시드 폴
루시드 폴 새 음반 ‘국경의 밤’
루시드 폴(본명 조윤석·32)은 그룹 동물원과 공일오비의 계보를 잇는 인텔리형 가수다. 동물원과 공일오비가 그랬듯, 20대~30대 전문직 여성과 대학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발표한 3집 음반 <국경의 밤>은 낯선 영토에서 보낸 슬픈 엽서 같다. 노랫말은 예명(맑은 가을)을 닮아 가을처럼 투명하고, 멜로디는 나른하고 외롭다.

타이틀곡 ‘사람이었네’는 그의 지식인적 특성을 오롯이 담고 있다. “어느 문닫은 상점/길게 늘어진 카페트/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난 중동의 소녀/방안에 갇힌 14살/하루 1달라를 버는…” 노래는 페르시아 양탄자와 아프리카산 커피를 생산하는 어린 노동자들의 고단한 현실을 낮게 읊조린다.

무거워보이는 주제를 노랫말로 옮긴 감수성도 좋지만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용기는 더욱 놀랍다. “이란 출신 친구와 함께 양탄자 가게를 지나가고 있었어요. 양탄자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는데, 그걸 만드는 여자 아이들은 하루 1달러밖에 벌지 못한다고 친구가 말하더군요.” 국제전화 선을 타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을 법한, 모범생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위스 유학중인 ‘과학자 가수’
고향 생각·노동자들 현실 노래
다음달 22일부터 귀국 콘서트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의 전공은 재생의학(조직공학)이다. 로잔공대 생명공학연구소의 연구원을 겸하며, 세포나 조직의 재생을 돕는 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교수와 함께 대기업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쓰고 있는 논문이 곧 박사 논문이 된다. 네슬레, 노바티스, 로슈 등 초국적 자본의 본거지에서, “청년이 된 그러나 내겐 소년인”(‘국경의 밤’) 그의 여린 가슴을 치는 것은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이다.

그는 “스위스의 제약회사들이 약을 개발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3세계 사람들이 헐값에 임상실험에 동원된다”며 “내가 신약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내년 여름이면 박사과정이 끝날 듯하지만, 계속 이 길로 가야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쌀쌀한 서양인들 틈에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진 그는 “요란스런 한밤의 불빛은 없지만/어디에서나 보이는 크고 소담스런 사람들”(‘라오스에서 온 편지’)을 그리워하며, “걱정마, 넌 우리보다 더 따뜻하단다/자랑스런 네 검은 피부 가리지마라”며 흑인 소년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고향 생각을 부추기지만, “올해 달력 위 붉은 글씨/추석이 와도 약해지지 않으려”(‘마음은 노을이 되어’) 마음을 다잡는다.

루시드 폴은 최근 ‘과학자 가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료들과 함께 작성해 그가 발표를 맡은 논문이 스위스 화학회에서 최우수 논문 발표상을 받은 것이다. 낮에는 연구에 매달리고 밤에는 음악을 하는 이중 생활을 용케도 이어가고 있다. “딴 짓을 안 하기 때문”이라며 그는 겸손해 했다.

대학생 때 인디밴드 ‘미선이’를 만들어 활동하느라 학부 성적이 나빴다. “제가 유학 가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걸 대학 동창들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며 그는 웃었다.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3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벌써 매진 상태여서, 26일 앵콜 공연을 하기로 했다. 30일에는 그의 고향인 부산 을숙도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루시드 폴은 공연 시작 일주일 전인 15일 귀국한다. 1544-1555.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안테나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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