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르와 친구들 전 찾은 사진가 강운구·열화당 이기웅 대표
세기의 걸작 ‘포토포슈 시리즈’ 80년대 국내 알린 30년 길동무
“장인의 통찰 진정성 담긴 명작…후대 사진가들 봐야할 본보기” “델피르의 미니 사진집 ‘포토포슈’는 사실 우리 두 사람의 긍지와 자부심이기도 해요. 국내 사진계의 고전이 된 열화당 사진문고가 바로 델피르의 이 역작 덕분에 태어났거든요. 저작권 개념이 낯설던 시절이라 ‘포토포슈’ 원본을 그냥 번역해서 찍었죠. 당시 책의 인기가 대단했어요.”
국내 사진동네 최고의 단짝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아이들처럼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진 출판 기획자 로베르 델피르와 사진 거장들의 인연으로 차려진 명품 잔치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델피르와 친구들’전(한겨레신문사 주최·2월27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지난 11일 낮 두 단짝 손님이 찾아왔다. 원로 다큐사진가 강운구(70)씨와 예술출판의 명가 열화당의 이기웅 (71)대표. 40년 지기로 함께 사진집을 내며 동고동락해온 두 사람은 전시장에 오자마자 델피르의 최고 작업으로 꼽히는 1980년대 포켓 사진집 ‘포토포슈’의 각 권 표지들을 모은 패널 앞으로 걸어가 섰다.
“1980년대 초반 외국에 출장을 갔더니 델피르의 이 작은 사진집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어요. 19세기초 사진 역사의 시발이 된 나다르부터 워커 에반스, 로베르 드와노 같은 거장들의 걸작들이 주머니 속 사이즈로 살뜰하게 편집되어 실려있는 거예요. 덩치크고 무거운 사진집이 아니라 이렇게 간편한 문고판으로 세계 사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영어, 불어본 몇권을 사들고 돌아와서 꼭 번역 출판해야한다고 이 대표한테 결사적으로 이야기했지요.”(강운구)
“국내에서 외국작가들의 사진집 출판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었어요. 도판과 편집 수준이 정말 놀랍더군요. 이건 해야한다 싶었어요. ‘포토포슈’ 원본을 강운구씨와 불문학자 권오룡 선생을 시켜 번역하고 저작권료도 안주고 시리즈를 낸 거죠.”(이기웅)
이런 곡절을 거쳐 1986년 처음 나온 열화당 사진문고의 ‘포토포슈’시리즈는 사진계에 선풍을 일으켰다. 카르티에 브레송, 로베르 드와노, 로버트 프랭크, 윌리엄 클라인 등 13권이 나온 이 번역본 시리즈는 외국 거장 사진집이 가뭄에 콩 나듯 했던 국내 사진판에 단비와도 같은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특히 두 사람이 가장 애착을 느꼈다고 털어놓은 것은 ‘결정적 순간’의 거장 카르티에 브레송 편이었다고 한다. 강씨는 “브레송의 사진이론서 <결정적 순간>의 미국판 서문을 번역해 사진집에 덤으로 넣자고 우겨서 결국 넣었는데, 그것이 또 큰 반향을 몰고와서 서문 내용을 줄줄이 외우는 게 사진계 유행이 됐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당시 나온 ‘포토포슈’시리즈는 지금도 헌 책방에 책이 전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소장가치가 높은 희귀본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델피르는 진정 중심의 자리에 걸맞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거장들과 평생 인연을 지속할 수 있었다”면서 델피르와의 인연도 털어놓았다.
“1989년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델피르가 관장을 했던 국립프랑스사진센터를 방문했어요. 당시 센터 관계자를 만났는데, 저작권 협의를 하고 책을 내야한다고 하더군요. 그뒤 서로 협의가 잘 안된 탓에 1990년대초 시리즈는 절판됐어요. 하지만 이를 계기로 영국 파이돈 출판사 등과 협약을 맺고 외국 사진가 작업들을 다룬 문고본 사진집을 계속 냈죠. 요즘도 20여년전 낸 포토포슈 시리즈가 왜 계속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 전화가 올 정도입니다. ”
흐뭇하게 옛 추억을 더듬던 두 사람은 뒤이어 사진거장 로버트 프랭크의 전시코너를 찾았다. 델피르와 손잡고 세계 사진사를 뒤흔든 사진집 <미국인들>(1958)을 냈던 전설적 대가다. 1950년대 초강대국 미국의 암울하고 비루한 일상을 조명해 충격을 던진 이 명작 사진집을 그들은 일일이 펼쳐보며 책 속 장면들에 얽힌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특히 1950~70년대 서구 거장들 사진에 해박하기로 이름난 강씨는 사진 속 주목할만한 명장면들을 하나하나 집어내면서 깊이있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프랭크는 교과서로 통하던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단번에 해체시켜버렸어요. 프랭크는 1940년대산 고물차에 가족을 태우고 돌아다니면서 고투한 끝에 이런 명작들을 건져냈어요. 여기 그 자동차 사진 보이죠? <미국인들>의 사진들은 초점이 맞지않고 흔들리는 것들이 많지만, 잡아낸 피사체가 너무 생생하고 진정성이 깃든 소재들이어서 명작이 된 거지요. 당시 미국 평단의 악평과 비난 속에서 청년기획자 델피르가 프랭크 사진의 가치를 알아보고 첫 출판을 주선해준 것은 놀라운 선견지명입니다. ”
강씨의 탄탄한 감식안은 다른 작품 코너 곳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카슈미르의 여인, 파리 생 라자르 역 등을 찍은 브레송 명작의 인화 과정에 숨은 노출 조작이라든가, 쿠델카의 어린아이 사진에 깃든 신비스러운 미학적 상징성 등에 대해 강의처럼 달변을 쏟아냈다. 강씨는 “작은 흑백사진들이지만, 치밀한 프린트 감도와 화면 톤의 깊이감 등에서 디지털 작업을 하는 후대 사진가들이 반드시 익혀야할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도 사진집 편집과 필자 선정 등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이뤄낸 기획자 델피르의 감각과 안목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80년대 포토포슈 번역본 시리즈를 다시 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둘 사이의 우정은 1973년 처음 싹텄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강씨는 이 대표가 기획한 고 박두진 시인의 시집 사진을 찍어주면서 38년간의 친교를 시작했다고 한다. 강릉 선교장의 유서깊은 집안 출신인 이 대표는 강씨가 그때 슬쩍 건넨 선교장 사진을 보고 옛집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 뒤로 서로에게 ‘꽂힌’ 두 사람은 이땅 곳곳의 산하와 문화유산 등을 함께 누비며 <경주남산><강운구마을삼부작> 등의 기념비적인 사진집을 함께 만들어냈다. “항상 내게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강씨를 평한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7일 강씨의 칠순 생일날 자신이 직접 찍은 작가의 사진들을 모아 한정판 사진집 <내친구 강운구>를 헌정하기도 했다. 추억 속 거장들의 사진첩을 펼쳐내며 전시장 곳곳을 이리저리 성큼성큼 걸어다닌 두 사람은 “뻥튀기한 디지털 사진들만 난무하는 요즘 세태에서 사진가의 태도, 장인적 통찰 등을 이야기하는 이 전시는 거장들의 ‘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1시간여 작품 산책을 끝낸 두 사람은 눈발을 맞으며 전시장 밖으로 사라져갔다. 어깨를 마주하며 도란도란 걸어가는 그들은 아름다운 친구들이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장인의 통찰 진정성 담긴 명작…후대 사진가들 봐야할 본보기” “델피르의 미니 사진집 ‘포토포슈’는 사실 우리 두 사람의 긍지와 자부심이기도 해요. 국내 사진계의 고전이 된 열화당 사진문고가 바로 델피르의 이 역작 덕분에 태어났거든요. 저작권 개념이 낯설던 시절이라 ‘포토포슈’ 원본을 그냥 번역해서 찍었죠. 당시 책의 인기가 대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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