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마무리 단장 작업이 한창인 서울 저동 삼일로창고극장의 모습. 삼일로 창고극장은 오는 10일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태광 후원 10일 재개관…뮤지컬 ‘결혼’ 첫 무대
서울 명동성당 뒤편 언덕길 중간, 두세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 너비의 골목길.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좁은 길 안쪽을 잠시 멈춰 서서 보면 ‘삼일로창고극장’이라는 문패가 눈에 띈다. 알고 보면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민간소극장. 1975년 ‘에저또창고극장’이란 이름을 걸고 국내 최초의 창고형 극장으로 문을 연 뒤, 그 이듬해 ‘삼일로창고극장’으로 재개관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오랜 세월만큼 부침도 잦아 폐관과 재개관을 수차례 거듭했다. 올해도 만성적인 재정난 끝에 폐관 위기에 내몰렸지만, 태광그룹의 후원으로 10일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올해 4월 태광그룹과 운영비, 공사비 등 2억7천만원을 후원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은 지 4달 만이다.
지난 5일 찾은 삼일로창고극장은 재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뙤약볕 내리쬐는 바깥에서는 자원봉사를 나온 태광그룹 직원 십여명이 외벽과 난간 등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며 구슬땀을 흘렸고, 극장 안에서는 개관 기념 공연인 뮤지컬 <결혼>의 출연 배우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가 새서 극장 천장 곳곳에 깡통을 달아 놓고 빗물을 받았어요. 이번에 방수 공사를 꼼꼼히 해서,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하게 됐습니다.”
이 극장 정대경(52) 대표의 얼굴엔 재개관을 앞둔 흥분이 비쳤다. 그는 회색 반팔 셔츠에 묻은 하얗고 노란 페인트 자국도 아랑곳 않고 개·보수를 마친 극장 구석구석을 열심히 안내했다. 숙원이었던 방수 공사를 벌이는 등 극장 시설을 손봤고, 객석도 재정비해 68석에서 106석으로 늘렸다. 원래 전시장이던 공연장 2층 공간은 야외 카페로 탈바꿈한다. 애초 5월 재개관할 예정이었지만, 잦은 비 때문에 공사 일정에 차질을 빚어 개관이 늦어졌다. 정 대표는 “객석이 늘어나긴 했지만,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소극장에서 공연 수익만으로 운영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문화에 관심을 가진 기업의 후원은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극장 대표를 맡아온 정씨는 원래 작곡을 전공하고 연극에서 음악 작업을 주로 했다. 그는 중학생 때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명배우 추송웅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봤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연극인으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이 극장은 각별한 곳인 셈이다. 추송웅이 제작, 기획, 연출, 장치, 연기까지 1인 5역을 맡은 <빨간 피터의 고백>은 77년 관객 1만3천여명을 모아 1인극으로는 전례 없는 흥행을 기록했다. 정씨는 내년 초 극장에서 1인극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우리 연극사에서 실험 연극의 메카가 됐던 삼일로창고극장 대표로서, 아무리 어려워도 본래의 실험 정신을 이어가는 게 의무라고 그는 믿는다.
10일 재개관기념식에 이어 무대에 올릴 뮤지컬 <결혼>은 다음달 24일까지 공연된다. 신세대 결혼관을 풍자한 극작가 이강백의 2005년 초연작으로 탤런트 박형준, 뮤지컬 배우 한은비, 이창완 등이 출연한다. (02)319-8020.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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