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동(34)씨
연극 ‘벌’ 무대디자이너 여신동씨
‘햄릿’ 등 화제작 공간연출로 주목
‘햄릿’ 등 화제작 공간연출로 주목
연극 <벌>은 말기암 환자인 주인공의 몸에 수만 마리의 벌이 달라붙으면서 시작되는 기이한 이야기다. 회색빛 일색의 톤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2시간 남짓 무대의 한가운데에는 거무튀튀한 껍질이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것처럼 인공적인 모양새의 이 나무는 몇달 전까지 경기도 고양시에 뿌리박혀 있던 고목이다. <벌>의 무대디자인을 담당한 여신동(34·사진)씨가 “소주 몇 병”으로 집 주인을 설득해 얻어왔다. “보통은 제작소에서 무대 소품들을 만드는데, 저는 직접 수집하는 걸 좋아해요. 나무든, 철근이든 여러 군데를 답사하면서 눈에 띄는 것을 모아 와요.”
나무 옆에 붙은 30개의 양봉통 역시 벌을 치다 그만 둔 경기도 파주시의 한 농가에서 구입했다. 하늘에서 꿀이 내려오는 연극의 한 장면에서는 30여 개의 스타킹에 모래를 담은 뒤 극장 천장에 매달아 천천히 흘러내리는 광경도 연출한다. 흔한 사물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마법처럼 몽환적인 상상의 도구들이 된다.
지난해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받은 여씨는 올해 연극 <햄릿>, <디 오써>, <응시>, <예술하는 습관>, 뮤지컬 <모비딕> 등의 무대를 만들었다.
연극 <벌>은 참여한 스태프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지난해 공연계에서 호평받은 연극 <하얀 앵두>의 김동현 연출가와 배삼식 작가 콤비의 만남에, 무용가 안은미씨가 배우들의 몸짓을 안무하고, 어어부프로젝트의 장영규씨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갑자기 바빠져서 스스로도 어리둥절”하다는 무대미술계의 신성 여씨까지, 공연예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두 모였다.
여씨는 올들어 스스로 헤아리기 힘들만큼 여러 작품에서 잠시도 쉴틈없이 무대를 만들어왔다. <벌>은 <레드>와 상연일이 겹쳐 동시에 작업했다.
그는 처음엔 공예디자인을 공부하다 군대를 다녀온 뒤 “갑자기” “별 생각없이” 무대미술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에 다시 들어가 무대디자인과 조명디자인을 공부했다. 2006년께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로 무대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머릿 속으로 생각한 그림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게 재밌어서” 무대미술을 계속해왔단다. 그는 언젠가는 “극장이란 공간에서 미술적 요소를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벌>은 3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1644-2003.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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