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호
자작곡 담은 ‘페로몬스타’ 발매
“불러만 주면 돈벌러 갈거예요”
“불러만 주면 돈벌러 갈거예요”
박민호(오른쪽 사진)에겐 오랜 꿈이 있었다. 짝사랑하던 여자를 쫓아 들어간 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할 때도, 졸업 뒤 게임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 일을 할 때도, 언젠가는 만화가가 될 거라는 확신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28살이 되던 해, ‘더는 안 되겠다’고 여긴 그는 5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빡세’라는 필명의 만화가가 됐다. 인터넷 만화 사이트에 첫 작품 <등급보류>를 연재하고 매달 30만원씩 받았다. “적어도 4~5년은 쫄쫄 굶으며 고생할 각오를 했는데, 그래도 라면 먹을 돈은 벌었으니 희망을 가졌죠.”
운이 좋았는지 1년쯤 지나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만화와 여행기를 결합한 <빡세의 무규칙 여행기>가 대박이 났다. 여행이라곤 해본 적 없는 아마추어 여행가가 혼자 전국 구석구석 다니며 만화로 풀었더니 많은 이들이 공감해줬다. 이제는 인터넷 신문 사이트 8곳에 연재하는 인기 만화가가 됐다.
빡세에겐 또다른 오랜 꿈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다니던 미술학원에서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통기타를 혼자 죽어라 연습해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 완주에 성공한 뒤로 로커의 꿈을 버린 적이 없다. 군대 가서 고참이 돼 시간이 남아돌 때 하루 10시간씩 기타를 쳤다. 제대하고 서울 홍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공연을 했더니 영 반응이 썰렁했다. 그래도 명함에 ‘카투니스트’와 ‘싱어송라이터’를 병기했고, 만화를 위해 여행을 떠날 때도 늘 기타를 챙겨 갔다.
올여름 홍대 앞 어느 카페에 앉아 있는데, 민머리에다 인상이 곱지 않은 사내가 들어섰다. ‘깡패인가?’ 했는데, 갑자기 기타로 멋들어진 블루스를 연주하는 게 아닌가. “저도 블루스 좋아해요” 하고 말을 걸었다. 민머리 사내는 홍대 앞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가수 겸 기타리스트 ‘김마스타’였다. 데모 테이프를 들려줬더니 김마스타는 “이건 유러피언 블루스야!”라며 음반 제작을 권했다. 빡세는 직감했다. ‘두번째 꿈을 이룰 때가 됐군.’
제작비로 거금 1천만원을 들여 두달에 걸쳐 녹음했다. 군대 시절부터 만들어온 자작곡들이 김마스타와 그의 음악 친구들 손을 거쳐 멋지게 재탄생했다. 그렇게 자신의 첫 앨범 <페로몬스타>를 이번에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뽕기’로 무장한 발라드 ‘그대 왜 나를’로 정했다. 팍팍하던 시절 친구에게 700만원을 떼였을 때의 아픈 기억을 담은 ‘돈 줘’는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쳤다.
“두 꿈을 다 이뤄서 행복해요. 그런데 저 취미로 앨범 낸 거 아닙니다. 음악으로도 돈 벌 거예요. 어디든 불러만 주시면 달려갑니다. 하하~. 재밌게 사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참 어려워요. 그러기 위해선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거든요.”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첫 앨범 <페로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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