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저녁 7시30분께 경기도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 연습실에서 한영애씨, 한돌씨, 김의철씨, 문지환씨(왼쪽부터)가 ‘청개구리들의 높빛메아리’의 네번째 무대, ‘한돌 타래이야기’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한영애씨, 한돌씨, 김의철씨, 문지환씨(왼쪽부터).
100℃ 르포 - 에이마이너? 비마이너? 어느게 좋을까? 두개 다 해보지 뭐
25일 저녁 7시30분께 바람이 더위에 지친 어깨 위로 살랑거렸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 연습실에선 어쿠스틱 기타의 잔물결이 여울졌다. 빠끔히 문을 열자 5~6명이 노릇한 감자빛 조명 아래 둥그렇게 모여 앉아 두런거리고 있었다. ‘여울목’, ‘홀로 아리랑’, ‘개똥벌레’를 만든 한돌(52)씨가 14년만에 서는 공연 연습 중이다. 올해 2월부터 짝수 달 셋째 주마다 열리는 포크콘서트 ‘청개구리들의 높빛메아리’의 네번째 무대다. 왜, 어디로, 사라졌어요? 아뿔싸. 방해가 됐나보다. 기타줄을 어르던 청개구리 예술감독 김의철씨의 손놀림이 멈췄다. ‘씩~’ 사람 좋은 웃음이 그의 입가에 이내 감돌았다. 한돌씨도 일어나 우스개부터 건넨다. “한돌은 밤 9시나 돼야 오는데요.” 김의철씨도 딴청이다. “한돌, 아직도 안 왔어?” 아니다. 그는 먼 길을 돌아 여기 있다. 한돌타래모음집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등 앨범 4장을 내놨던 그는 앨범 마스터까지 모조리 없애 재발매 길까지 묶어두고 표표히 사라졌다.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그저 창피해서…. 어릴 때 쓴 일기 보면 재미있지만 쑥스럽죠.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이 왜 깨부수는지 알겠더라고요.” 느릿느릿 그가 이야기할 때 문지환(38)씨가 리코더를 불었다. 김의철씨도 다시 기타를 껴안았다. 이런 연습이 이날로 2주째다. 한영애씨가 문을 열고 들어서 마치 잠시 자리를 비웠던 사람처럼 앉았다. 서울 양재동에서 녹음을 마치고 오는 길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돌씨가 예전에 그에게 준 ‘여울목’ ‘갈증’ 두 곡과 ‘고운동 달빛’의 코러스를 부를 예정이다. 이날이 처음 맞춰보는 거라는데 20여년 노래로 연이 닿은 사이라 거추장스런 인사 따윈 그닥 관심 없어 보였다. 리코더의 울림으로 곧 ‘고운동 달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야야 예이이~” 한영애씨는 노랫말 빼고 멜로디를 따라갔다. 이어 김의철씨의 기타가 물결치는데 이 중년 아저씨의 표정은 이미 꿈결 속이다. “마음의 옷을 벗고 달빛으로 몸 씻으니, 설익은 외로움이 예쁜 꽃이 되는구나, 해맑은 꽃내음을 한 사발 마시고 나니, 물젖은 눈가에 달빛이 내려앉는구나.” 한돌씨의 낭독이 그 물결을 탔다. 이어 한영애씨가 노래로 받는다.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어느새 화음이 내려앉는다. “한돌, 아직도 안 왔어?”
“지리산아, 이 부분에서는 확 올라가야 돼”(한돌) “에이마이너는 낮아서 중얼거리는 것 같고, 비마이너는 좀 떠.”(한영애) “그래야 낭송이 폼 나지” “혼자만 폼 내려고”…. 지분거리다가도 곧 진지해진다. “에이마이너? 비마이너? 어느 게 좋을까?” “두 개 다 해보지 뭐”(김의철) 다시 시작이다. “글쎄 난 아무래도 에이마이너로 가는 게 나은 것 같아” “그래? 다시 해보지 뭐.” 계속 이런 식이다. “전체적인 틀만 잡아놓고 연습하면서 각 파트는 편곡까지 하는 거예요. 시간은 많이 잡아먹지만 더 좋은 걸 얻을 수 있어요.”(한돌) “그런데 한돌이 왔어?” 김의철씨는 아직 우스개의 여운을 잊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어. 한돌인척 하느라 힘들어 죽겠네.”(한돌) 젊은 축인 문지환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리코더에만 정성을 쏟는다.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다녔어요 주변 사람들이 한돌씨의 존재로 너스레를 떨 만큼 그의 부재는 길었다.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 이런데 많이 다녔어요. 노래는 천직이니까 계속 만들긴 했어요.” 좀처럼 자기 설명을 길게 달지 않는다. 답답했던지 한영애씨가 끼어들었다. “한돌씨 곡은 꾸밈없이 간결하고 그 자체로 완결돼요. 누구나 삶이 음악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실제로 몸 담아 음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한돌씨는 백두산에 대해 노래를 만들 땐 2~3개월은 거기서 텐트 쳐요. 고운동에도 몇 번을 갔는지 몰라요. 경험에서 우러나오니까 감동이 있죠.” 한돌씨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고운동은 지리산 자락에 있었는데 없어졌어. 댐 때문에 마을이 통째로….” 이내 한영애씨를 보며 장난을 건다. “그런데 너 내 대변인해라.” “얼마 줄 건데?” 몇 푼 가지고는 모자랄 듯하다. 그를 이 무대에 서게 하는 데 한영애씨 등 주변 사람들의 어르고 달램이 한몫 했다. ‘쌓아둔 거 이제 소통하고 싶지 않냐’는 꼬시기, ‘노래 못하는 가수가 나올 때가 됐다’는, 말도 안 되는 어르기, ‘사람들이 이런 음악으로 쉬어가며 일상을 생각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보채기, 전화 걸 때마다 “가수 한돌씨”라고 부르며 최면걸기…. 그래도 결심을 한 당사자는 그다. 그가 다시 무대에 서기로 하며 쓴 글이 그 속내를 살짝 드러낸다. “내 마음엔 잘생긴 타래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정성을 다해 가꾸면 타래라는 열매가 열렸다. 그 열매를 힘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게으름이란 세균이 온몸에 퍼진 것이다. … 지리산에서 봄눈을 만났다. 마비됐던 마음도 다시 움직였다. 노래가 돌아온 것이다.” “포크보다 타래라는 낱말이 좋아요. 추위나 더위를 타다할 때 ‘타’와 노래의 ‘래’를 합친 말이에요.” 오는 8월27일 고양별모래극장에서 ‘개똥벌레’ 등 그의 잘 알려진 노래 뿐만 아니라 ‘아무도 없는 학교’ 등 미발표곡 5곡을 ‘탈’ 수 있다. 이 공연에서 이정미씨, 폴리포니앙상블이 함께 하며 그는 20곡 가운데 11곡을 부른다. 1970년 서울여자기독교청년회에서 ‘청개구리의 집’으로 시작해 청년문화를 일궜던 ‘청개구리’가 2003년 방의경 콘서트로 부활해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듯 그도 다시 이 시대와 함께 숨쉬기 시작했다. 공연문의 (031)960-9623.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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