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성탄절 ‘사랑의 바이러스 콘서트’를 진행하는 서희태·고진영씨 부부.
11년째 성탄절 ‘사랑의 바이러스 콘서트’ 서희태·고진영씨 부부
“이제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가 없어요. 크리스마스 음악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증장애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팔이 없고 어깨에서 곧장 손이 달린 아이가 있었어요. 이제 나이가 차서 재활원을 떠났지만, 늘 우리가 올 날만을 기다리곤 했는데 올해도 아마 음악회 보러 올 거예요.”(서희태) “그래서 우리 부부가 이맘때면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아이들을 위해 재롱잔치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고진영)
밀레니엄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서희태(49), 소프라노 고진영(48)씨 부부는 중증장애 아들에게 11년째 ‘음악 산타’다. 올해도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전 10시 서울 강동구 주몽재활원에서 ‘사랑의 바이러스 콘서트’를 연다. 부모가 없는 60여명의 재활원 아이들과 이웃 주몽학교 장애아, 교사, 자원봉사자 등 300여명을 위한 특별한 무대다. 1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카페 짬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남편 서씨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탤런트 김명민이 열연한 지휘자 ‘강마에’의 실제 모델로, 드라마의 음악감독까지 맡았었다. 이들 부부가 2004년 처음 주몽재활원에서 음악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내 고씨의 제안이었다. “1990년대 말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기에 귀국했어요. 다 힘들었지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적응된 뒤부터 아동복지시설 같은 곳을 돕자고 했어요. 한해 한번은 음악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힘으로 즐거움을 제공해주자고요.”
서씨는 10년 전 첫 연주회를 열던 때를 잊지 못한다. “아이들한테 소원을 물으니까 ‘밖에 나가서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20명을 자원봉사자가 한명씩 안고 버스를 빌려 타고 나가야 했어요. 어렵게 그런 기회를 마련해 햄버거도 먹이고 영산아트홀에서 공연도 보여줬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오스트리아 빈 시립음대 유학생이던 1990년 결혼한 이들 부부도 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돈이 별로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수도 없이 했어요. 그런데 92년 첫째, 93년 둘째를 낳고 보니, 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학생 둘이 아이를 안거나 유모차에 싣고 수업을 받았어요. 한 사람이 수업 들어가면 한 사람이 복도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있고, 둘 다 수업 들어가면 교수님들이 끌고 다녔어요. 고마운 일이었지요. 정말 힘들었고 그만큼 행복한 때였습니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도 영화의 한 장면이다. 서씨가 89년 빈 시립음대에 도착해 교수 방에 가니 한 여성이 베르디의 벨칸토 아리아를 부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저를 소개하자, 지금 노래하는 사람도 한국인이니까 행정 절차를 물어보라고 해요. 그 여성한테 악보를 빌려서 다음날 돌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첫 데이트가 이뤄졌어요. 그 악보는 원래 저도 가지고 있던 거니까, 처음부터 작업을 건 거죠.” 서씨는 일주일 만에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했다. 4년째 유학생활 중이던 고씨도 뿌리치지 않았다.
이번 재활원 음악회에는 ‘세계 민속악기’ 연주자 조현철씨와 그의 연주팀, 피아니스트 장유리씨도 동참한다. 각계에서 물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씨 부부는 재활원 음악회 말고도, 한해 한번씩 별도의 자선음악회를 연다. 올해도 지난달 14일 서울 <한국방송>(KBS) 홀에서 연탄 나눔 자선콘서트를 열어 연탄 8만장(4000만원)의 후원금을 기부했다.
글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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