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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제주의 바람소리, 노래가 되다

등록 2015-04-28 19:39수정 2015-04-29 01:47

‘10년차 제주살이’ 가수 장필순
애월읍 집에 놀러온 이적과
기타 뜯으며 만든 ‘고사리 장마’
비·바람소리도 담아 싱글 발매
매달 1곡씩 12곡 앨범 내기로
“한라산 한달음에 오르는 대신
매일 작은 오름 오르듯 살고파”
가수 장필순씨.
가수 장필순씨.
참 신통하다. 애달프게 키우려고 할 땐 아무것도 자라지 않더니 잊은 채 내버려두니 저 혼자 잘 자랐다. 가수 장필순(사진)이 매달 한 곡씩 발표한 노래를 모아 한 장의 앨범으로 만드는 싱글 프로젝트 <소길1화(花)>를 시작했다. 29일 예전에 불렀던 노래를 다시 편곡해 만든 베스트 앨범 <수니 리워크 1>의 첫번째 노래 ‘다시 부른 제비꽃’도 발표한다. 제주생활 10년을 넘기며 한동안 멀어졌던 음악의 길이 다시 트인 듯 시동을 걸고 있는 장필순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길1화(花)> 첫째 곡 ‘고사리 장마’는 절로 땅을 밀고 올라와 숲을 덮어버리는 고사리 같은 노래다. 제주에선 4월 중순께 1주일 정도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두고 고사리를 자라게 하는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그토록 찾아봐도 안 보이더니/ 어느새 소리 없이 솟아올라 온 고사리들/ 당신을 보내고 난 뒤/ 이렇게 훌쩍 자랐네.”(‘고사리 장마’ 중에서) 곡은 화사한 코러스로 시작해 피아노와 현악기가 끌어가며 숲의 어둡고 환한 느낌을 고스란히 담는다. 이별 뒤를 말하고 있지만 눈물은 없다. 숲에서 상처가 서서히 아무는 것을 보는 듯 신비로운 곡이다.

커버 사진부터가 그가 사는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집 너와지붕 처마다. 가수 이적이 그의 집에 놀러왔다가 문득 기타를 뜯으며 만든 노래를 조동익과 다듬은 것이다. ‘고사리 장마’엔 제주에 내리는 비와 바람소리가 덧붙었다. “의식적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제주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곡의 느낌이 생겨난 것 같아요. 워낙 조동익 선생님과 제가 이런 걸 좋아해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조합한 듯한.”

어떤 공간이 이런 소리를 만들었을까? 장필순씨의 스마트폰 사진첩을 들여다보니 제주 집 660㎡ 넓이 마당에는 벚꽃이 눈처럼 쌓였다. 4월부턴 배나무꽃이 집으로 들어오는 좁은 길에 내려앉고, 참나물, 부추, 방풍나물이 갈지도 않은 밭에서 잘도 자란다. 처음엔 흙보다 많은 돌 캐기에 지쳐 드러눕곤 했지만 이젠 적당히 버려두고 적당히 거두는 ‘태평농법’의 달인이 됐다. 봄과 여름에는 근처 사는 (이)효리씨네 집으로 놀러가서 잔디밭에 자리 깔고 함께 요가도 하고 밤이면 모닥불을 피운단다. 가을엔 헛개나무나 여러 약초를 거두고 갈무리한다. 눈이 많이 쌓여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겨울엔 지은 지 20년쯤 되는 집 문을 닫아걸고 기르는 6마리 개와 함께 겨울을 난다.

2002년 “영혼을 쏟아부었던” 6집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땐, “진정성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깊이 실망을 느끼기도” 했다. 2013년 무려 11년 만에 7집 음반을 냈다. “2005년 제주도로 온 뒤 거의 음악 활동을 안 했음에도 연이 끊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한동준, 조윤석(루시드폴), 피아니스트 임인권씨 등도 제주로 이사왔고, 후배들도 보름씩 머물고 가요. 음악동네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석처럼 되돌아갈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게다가 지난해 말엔 몸이 아파 수술까지 받으니까 내가 언제까지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벼르던 작업들을 시작했어요.”

지금도 계속 수렁에서 헤매지만 지나친 욕심 보따리는 여럿 내려놓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완성된 앨범을 내놓지 않고 한 달에 한 곡씩 모으는 <소길1화(花)> 프로젝트가 그 증거다. “전엔 한라산을 한달음에 오르려고 했다면 이젠 매일 작은 오름을 오르려고요.” 12곡을 모으면 소길화는 꽃(花)일 수도, 그림(畵)일 수도, 이야기(話)일 수도 있단다. 꽃으로 출발한 소길리 이야기는 제주 오름처럼 변화무쌍한 풍경을 향해 달려간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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