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제5회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렸다.
27일 아침 서울 강서구 가양동 물류창고 앞에 긴 줄이 생겼다.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내는 ‘한정 음반’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디지털 음원이 대세를 이루면서 바이닐 레코드와 시디는 희귀한 매체가 됐다. 그런데 소수를 위한 레코드 시장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은 대중음악사에서 의미있는 음반이나 숨은 걸작, 주목할만한 신예들의 음악 등을 엘피나 에스피 음반같은 바이닐 레코드로 다시 만든 것이다. 쉽고 빠르게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음악들 중 기념하고 간직할 음악을 레코드로 만드는 트렌드다. 서울레코드페어를 찾아 바이닐 레코드로 새롭게 태어나는 음악들을 살펴봤다.
가수 나미의 걸그룹 시절 음반 등
재녹음 레코드 사려 아침부터 긴줄
1년새 입장객 30%-매출 15% 늘어
소장용·감상용에 맞교환 대비까지
수집가는 한 레코드를 2~3개 구매
“입장객 중 20대가 절반 가까이 돼”
한정반을 사는 긴 줄을 지나 창고로 들어가니 음반과 시디, 턴테이블을 파는 90개 부스가 있었다. 서울레코드페어는 음악애호가를 위한 대중적인 시장이다. 이곳에도 빌리 홀리데이가 죽기 몇 달 전에 녹음한 마지막 음반 <레이디 인 새틴>이나 모든 정규앨범을 엘피로 발매해온 김두수 2집 등 몇 가지 값비싼 음반이 있었지만 대부분 레코드들은 5000원에서 7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었다. 서울레코드페어의 주연은 중고가 아니라 오래전에 레코드, 테이프, 시디로 나왔던 음반을 다시 녹음한 재발매 레코드다. 서울레코드 페어 한정반도 1971년 나온 아이들의 <아이들과 함께 춤을>, 가수 나미가 한국 데뷔전 활동했던 캐나다 걸그룹 해피돌스의 1978년 음반, 시디로 만들어졌던 노이즈가든의 1996년 앨범 등을 다시 제작한 것이다. 오리지널 음반처럼 값은 높지 않지만 그 시대의 음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채워주는 음반이다. 이 음반도 세월이 흐르면 값이 오르기도 한다.
27일 오후 2시,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 중에서 밴드 혁오의 <뱀부/판다 베어>가 가장 먼저 품절됐다. 김사월x김해원 음반 <비밀>도 모두 팔렸다. 요즘 레코드는 새로운 음악을 듣는 방법이기도 하다. 책 <대중가요 엘피가이드북>을 쓴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씨는 “아이돌도 엘피 음반을 내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가수 지드래곤이 만들었던 엘피 두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몇배로 뛰어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동물원 1집, 가수 조용필이 김트리오악단과 녹음한 음반, 정태춘 1집 등을 재발매 레코드와 시디로 만들어 부스에 진열한 엠아르시(MRC)의 곽근주 대표는 “음반을 사가는 사람들 중 20대가 절반 가까이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들의 음악을 들어본적이 없을 법한 젊은 세대들이 엘피부터 구입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레코드는 패션같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첫날 입장객은 4500명. 행사를 마련한 협동조합 라운드앤라운드는 서울레코드페어 이틀동안 팔린 레코드가 1억5000만원~2억원어치 정도로 추산한다. 지난해 보다 입장객은 30%, 매출은 15% 정도 늘어났다. 라운드앤라운드 회원이자 김밥레코드의 김영혁 대표는 “한국에서도 레코드 장터가 한해 한해 확실히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음원 다운로드 수치마저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음악산업엔 위기감이 커가지만, 오히려 레코드 판매량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14년 미국 내 신규 레코드 판매량은 920만장으로 2013년 대비 52%가 늘었다.
장르와 값도 다양한 수만가지 레코드들이 쌓인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소문난 음악애호가들은 무엇을 골랐을까? 최규성씨는 전설적인 레코드 중개상 ‘종로좌판’ 부스에서 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낸 음반과 북한에서 제작된 <두만강>을 샀다.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 10개는 각각 2~3개씩 사는 바람에 들고 가기도 어렵게 됐다. 레코드는 시디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음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수집가들은 보통 한 레코드를 2~3개씩 산단다. 1개만 음악 감상용이고, 다른 1개는 소장용이며, 다른 수집가와 만났을 때 교환할 요량으로 1개를 더 사두기도 한다.
둥근 레코드는 돌고 돈다. 책 <더 기타리스트>를 쓴 정일서 피디는 혜은이·양희은·구창모 등의 한국 대중가수들의 음반을 여러장 샀다. 음악평론가 김학선씨는 엘피를 수집하진 않지만 해마다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한정 음반을 사왔다고 했다. 이날 가장 먼저 음반이 품절됐던 밴드 혁오의 리더 오혁도 행사장에 왔다가 수프얀 스티븐스의 앨범 <캐리앤로웰>을 샀다.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기타리스트와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일본인 하세가와 요헤이도 한정 음반을 사러왔다. 하세가와는 “90년대말 일본에서 오래된 레코드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올랐던 ‘레코드 버블’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값이 안정됐다. 하지만 그때그때 음악 유행에 따라 오늘 비싸던 레코드가 내일은 내려가고, 갑자기 값이 오르기도 한다. 레코드 가치는 늘 변한다”고 했다.
최규성씨는 어렵게 레코드를 구해서 턴테이블위에 올려놓기까지의 “경건한 과정”을 이야기 했다. 어떤 사람은 레코드 유행이 패션이거나 마케팅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재테크로 설명한다. 어쨌거나 음악은 가질 수 없지만 레코드는 가질 수 있는 귀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창고를 한바퀴 돌며 한바탕 구경을 마치고난 최규성씨는 “자꾸 다시 가보고 싶다. 거기에 뭐가 있을 것만 같다”고 했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서울레코드페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