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한마디로 팝송 바보였다.” 9일 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고 김광한(69)씨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디제이 박현준은 이렇게 말한다. 버는대로 남는대로 모두 음악에 투자했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박현준씨는 2002년 한국방송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 팝스> 프로그램에서 마련한 ‘일반인 디제이 콘서트’에서 김광한씨를 처음 만났다. 김씨의 조언과 도움 덕분에 그는 지금 경인방송에서 10년째 <박형준의 라디오가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평소 혈육처럼 따르던 김씨가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자 상주 역할을 맡았다.
대중음악 컬럼니스트 최규성씨는 김광한씨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몹시 싫어해서 꼭 형이라 부르도록 했다”며 인디밴드들을 그야말로 형님처럼 챙겼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 방송도 시도하고 록페스티벌은 물론 홍대앞 작은 공연까지 다 들르면서 최근 음악들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록밴드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직접 드럼을 배우기도 했다.
“모든 공연에는 항상 김광한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씨는 크고 작은 공연을 모두 다 보는 것으로 유명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 팝스>를 만든 한국방송 라디오국 정일서 피디도 “지난해에도 공연장에서 만난 일이 있다. 예전에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사람은 많지만 그분처럼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 김광한씨가 2013~2014년 진행했던 CBS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 마지막 방송 장면. 사진 최규성 작가 제공
고 김광한씨는 1966년 1월 한국 최초로 FM 전파를 내보낸 서울FM에서 19살, 최연소 라디오 디제이로 데뷔했다. 그뒤 여러해 동안 음악다방 디제이로 활동하다가 1979년 박원웅이 진행한 문화방송(MBC) 라디오 <박원웅과 함께>에 게스트로 나오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방송 라디오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1999년부터는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 팝스>를 진행하면서 80~90년대 라디오 시대를 이끌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시비에스(CBS)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했던 최규성씨는 프로그램 개편으로 이 프로가 없어지던 날 김씨가 몹시 아쉬워했다고 떠올렸다. 최씨는 “광한이 형님은 정말 잠시도 마이크를 놓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으니 ‘너는 좋겠다’며 부러워했다”고 마지막 방송의 기억을 전한다.
“허니허니, 여러분의 허니에요” 아바의 노래 ‘허니허니’와 함께 청취자들을 찾아오던 디제이 김광한씨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을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음악적 추억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김광한의 라디오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