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자씨.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시스터즈’ 칠순의 민자
한국전쟁의 상흔이 여전했던 1959년. 3명의 소녀가 미국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숙자, 애자, 민자.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걸그룹 ‘김시스터즈’ 멤버들이었다.
“‘오 마이 갓, 나 혼자서?’ 이번에 한국에 오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왔지만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니 정말 가슴이 벅차요.”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호텔에서 만난 김민자(74)씨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18살 걸그룹 멤버였던 소녀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 다시 국내 무대에 선다. 김시스터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다방의 푸른 꿈>(김대현 감독)이 13일부터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되면서 민자씨는 개막 공연 무대에 초청 받았다. ‘목포의 눈물’과 ‘다방의 푸른 꿈’ 등을 부를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처음 미국에 진출한 ‘원조 한류 스타’였다. 라스베이거스가 너무 화려해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그들은 성공을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 영어를 못했지만 팝송을 통째로 외웠다. 가야금, 장구, 기타, 색소폰, 트럼펫, 아이리시 백파이프 등 13개가 넘는 동서양 악기를 연주했다. 노래와 다양한 악기에 능수능란한 동양의 세 소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화제가 됐고, 당시 인기 절정인 텔레비전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면서 스타가 됐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롤링스톤스 등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출연했던 이 프로그램에 김시스터즈는 무려 20번이나 나왔다.
이난영씨 딸들과 조카로 구성
18살 라스베이거스 진출뒤 스타로
유명 ‘에드 설리번 쇼’에 20번 출연 일대기 다룬 ‘다방의 푸른 꿈’
제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돼
70년 해체뒤 수십년만에 고국 무대
“우리 기억하고 있다니 가슴 벅차”
“<에드 설리번 쇼> 무대 뒷편에선 싸움이 많이 일어났어요. 모두 무대에 조금이라도 더 있으려 했으니까요. 스타들끼리 서로 소리지르고 매니저들은 주먹 다툼도 했죠.” 김시스터즈는 1년에 단 2주일만 쉬면서, 엄청난 공연과 연습을 통해 치열한 쇼비즈니스 세계를 헤쳐나갔다.
“한국을 떠날 때 어머니가 가르친 게 있어요.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라, 그러면 떨어질 때 잡을 것이 생길 것이다’ 그랬죠. 또 절대 데이트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룹이 깨진다고요.” 그들의 어머니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을 말한다. 숙자, 애자씨는 불후의 대중음악 작곡가 김해송과 가수 이난영 사이에 태어난 자매였다. 민자씨는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딸이다. ‘김시스터스’는 이난영이 당시 주한 미8군 무대를 겨냥해 전략적으로 만든 걸그룹이었다. 영화 <다방의 푸른 꿈>엔 이난영이 생계를 위해 유랑극단 만들듯 연년생 딸과 조카를 모아 ‘김시스터’를 만들고 훈련한 과정이 나온다.
“싸우진 않았냐고요? 우리는 각자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경쟁을 안했어요. 애자 언니가 코미디언처럼 재밌는 표정과 대사를 곁들여 노래하면 숙자 언니는 멋지고 섹시하게 나는 덤덤하게 보조 맞춰주는 역할이었거든요.” 세쌍둥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던 김시스터즈는 1968년 민자씨와 애자씨가, 69년엔 숙자씨가 결혼하면서 활동이 뜸해졌고, 1970년 한국 귀국공연을 끝으로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우리가 철이 들고 남자들을 알고 데이트를 하면서 천천히 내려왔죠. 결혼할 때는 이미 하워드 휴즈가 호텔에 도박산업을 들여오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음악산업이 하락할 때였어요.”
하지만 1965년 그들의 음악적 어머니 이난영이 한국에서 생을 마칠 때쯤 이미 김시스터즈의 황금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반짝이는 중국옷을 맞춰 입고 무대에 올라, 트럼펫 불고 코를 찡긋거리며 노래하던 이들에겐 어려운 인생이 시작됐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076달러이던 시절 일주일에 1만~1만5천달러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고 10년정도 전성기를 누렸으니 많이 벌었을테지만 너무 어려서 돈을 챙기질 못했어요.” 헝가리의 재즈 뮤지션 토미 빅과 결혼한 민자씨는 2011년부터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다. 그는 지금도 남편과 함께 1년에 3~4번은 큰 무대에서 공연한다. 애자씨는 1987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숙자씨와 민자씨는 교류가 뜸해졌다고 했다. “숙자 언니는 지금 라스베이거스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데 정말 영리하고 강한 사람이라 무엇을 하든 성공할 거예요.” 민자씨는 오는 16일엔 미미시스터즈와 바버렛츠가 만든 김시스터즈 헌정 콘서트 ‘기쁘다, 민자 언니 오셨네’ 무대에도 오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18살 라스베이거스 진출뒤 스타로
유명 ‘에드 설리번 쇼’에 20번 출연 일대기 다룬 ‘다방의 푸른 꿈’
제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돼
70년 해체뒤 수십년만에 고국 무대
“우리 기억하고 있다니 가슴 벅차”
<다방의 푸른 꿈>에 나오는 김시스터즈가 활동하던 당시 모습.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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