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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무대에서 난 조물주…나만의 판타지에 빠져든다”

등록 2015-09-14 19:20수정 2015-09-25 13:26

가수 한영애.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A href="mailto:woo@hani.co.kr">woo@hani.co.kr</A>
가수 한영애.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한영애 노래인생 40년


1976년 포크 그룹 해바라기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가수 한영애가 40주년을 맞았다. 스무살 때 포크 가수로 출발해 블루스, 록, 테크노, 트로트 음악을 노래했던 그는 어떤 장르에서도 ‘최초의’ 가수는 아니었지만 모든 장르에서 ‘고유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10월9일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가수 한영애를 만났다.

1976년 포크그룹 ‘해바라기’로 데뷔
신촌블루스 참여 ‘블루스 디바’ 명성
내달 9일부터 ‘신스 1976’ 순회공연
‘멋진 그대여’ 두번째로 불러봅니다

“나는 추억의 책갈피를 넘겨보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나는 어제를 들춰보지 않아요. 회고를 싫어한다기보다 그런 디엔에이 자체가 없어요.” 그러나 40주년 공연을 앞둔 한영애는 자신을 만들어온 것이 무엇이었나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해바라기 이정선과 신촌블루스 엄인호가 시작이었음을 새삼 깨달았고, 세 사람은 ‘한영애 40주년’을 함께 연주하고 노래한다.

“해바라기에서 통기타 음악을 할 무렵, 난 그때 록 음악에 심취해 있었어요. 전기 기타 울리는 소리와 함께 소리지르며 노래하고 싶었는데 포크에선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77년 창고극장에서 하는 연극(<덧치맨>) 출연 제의가 들어와 갔더니 맨발로 뛰지, 소리 지르지, 록 창작극이지…. 내가 꿈꾸는 세상이 거기 있더라고요.” 그렇게 연극배우로 삶을 살았다.

“들끓는 에너지, 환상에 쫓기는 생각들, 답답한 속을 해소해줄 수 있는 것을 찾으러 다녔지 가수 할 거란 생각을 못 했다”는 그는 서른이 되면서 다시 연극판을 떠나 가수의 길로 돌아왔다. 1986년 이정선의 도움으로 솔로 음반 1집 <여울목>을 내고 프로젝트 그룹 신촌블루스에도 참여했다.

“연습하면서 엄인호씨에게 ‘오빠, 노래 어떻게 하는 거야?’ 계속 물어봤어요. 진짜 노래하는 법을 다 잊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시 가수로 서는 게 너무 긴장돼서요. 1986년 샘터 파랑새극장에서 프로젝트를 알리는 첫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올 줄 아무도 몰랐어요. 결국 연장 공연까지 했죠.” 당시 클럽 공연의 황제였던 김현식, 빅스타였던 이광조의 이름이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신촌블루스는 무명에 가까웠던 한영애를 ‘블루스의 디바’ ‘대체불가능한 보컬’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여울목>에 실린 ‘건널 수 없는 강’부터 한영애를 대표하는 힘센 소리들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누구 없소’ ‘코뿔소’(2집 <바라본다>, 1988)에서 한영애의 음악세계는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2년 발표한 ‘조율’과 1993년 라이브 앨범 <아우성>은 아티스트가 자기 색을 확립한 이후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음반이다. 한영애는 다작의 가수가 아니다. 신촌블루스 시절 2장, 해바라기일 때 3장 앨범을 냈다. “나는 앨범에 새로운 창작곡을 넣어야만 한발짝 앞으로 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곡을 쓰는 것보다 노래하는 게 먼저 발달했기 때문에 내 음악적 생각을 곡으로 만드는 게 어려워요. 3집을 낼 땐 하나의 코드로 음반 하나를 채우고 싶었는데 곡 만들어줄 사람이 없더라고요. 어떤 음악에 대한 생각이 미쳤을 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느라 3~4년 걸리고 마침내 찾았을 땐 내가 (그)음악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기 쉽죠.”

“새로운 노래를 내는 데는 느리지만 한번도 가수임을 잊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지난해 말 15년 만에 6집 <샤키포>를 냈다. 강산에·방준석·김도현·황경신 등과 발라드, 아르앤비, 록 같은 다양한 장르를 한데 노래한 앨범은 그가 음악적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는 징표다. 그렇지만 인터뷰에서 한영애는 “앞으론 앨범이란 개념 자체도 바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아날로그 개념의 앨범은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고 쓸쓸히 말했다.

음반을 만들 때 완벽주의를 추구한 그는 무대에선 더욱더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연극무대에서 익힌 화려한 퍼포먼스, 신들린 듯한 목소리로 객석을 덮치는 듯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그는 “무대는 내 생활의 거울”이라고 믿고 있다. 공연을 한달 앞두고는 ‘무대용 몸’ 만들기에 들어간다. 공연이 코앞에 다가올 때면 마음은 자신만이 생각하는 완벽한 무대, 환상의 세계로 가버린다. 그리고 스스로 조물주가 되려 한다. “무대에서 나는 조물주나 된 것처럼 한 세상을 만드는 존재”라고 장담하는 한영애는 무대에 서면 “내가 생각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관객과 나 사이에 장막을 친다”고 했다.

이번 무대에선 여태껏 단 한번밖에 부른 적이 없다는 ‘멋진 그대여’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의 40년 노래 인생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여러 비밀을 품고 있다. “돌아가신 작곡가 이영훈씨가 늘 ‘옛사랑’ 가사가 자기 일생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나한테도 그런게 있어요. 주변에 농담 삼아 부탁한 적이 있어요. 내가 사라지면 한달이나 석달 뒤에 밖으로 알려라. 헌정 공연은 절대 안 된다. 그냥 잊으면 된다. 추모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거든 거기에 ‘상사꽃’ 가사를 써붙여라.” 스스로 한영애와 가장 닮았다는 ‘상사꽃’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 마음속에 나비 한 마리/ 소리 없는 날개짓/ 보자기 속에 어제의 시간/ 매듭을 풀어주네”

40년 시간의 매듭을 푸는 공연 ‘신스 1976 …’은 10월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시작해 지방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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