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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탱고의 전설’ 파블로 베론 초청공연

등록 2005-10-12 18:23수정 2005-10-13 15:24

‘아르헨티나 탱고의 살아있는 전설’ 파블로 베론(34)이 지난 8일 밤 서울 서초동 토탈댄스협회 스튜디오에서 공연하고 있다. 100여평 남짓한 공간의 한쪽 귀퉁이에 모여 앉은 ‘땅게로스’들은 베론의 몸짓 하나하나에 감탄사를 토해냈다. <씨네21> 서지형 기자 <A href=\"mailto:blackaura@cine21.com\">blackaura@cine21.com</A>
‘아르헨티나 탱고의 살아있는 전설’ 파블로 베론(34)이 지난 8일 밤 서울 서초동 토탈댄스협회 스튜디오에서 공연하고 있다. 100여평 남짓한 공간의 한쪽 귀퉁이에 모여 앉은 ‘땅게로스’들은 베론의 몸짓 하나하나에 감탄사를 토해냈다. <씨네21> 서지형 기자 blackaura@cine21.com
[100℃르포] 상체붙여 A자 모양 3분간 짜릿함에 취해∼오!

탱고 마니아들은 말한다. “탱고는 춤의 종착역”이라고.

지난 8일 밤 11시 서울 서초동 토탈댄스협회 스튜디오에는 150여명의 땅게로스(아르헨티나말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살아있는 ‘아르헨티나 탱고의 살아있는 전설’ 파블로 베론(34)의 초청 공연을 보려는 것이다. 베론은 영화 <탱고 레슨>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탱고 선생 역으로 출연해, 탱고라는 춤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린 스타 댄서다.

검은 수염을 기른 베론이 검은 재킷에 짙은 감청색 바지를 입고 나타나자 좌중은 잠시 술렁였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는 마치 숫사자의 갈기 같았다.

우린 탱고 추는 ‘땅게로스’

드디어 첫 곡. 베론과 그의 파트너 노엘 스트라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이 펼쳐질 때마다 한숨같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한 몸인 듯 절묘하게, 우울하지만 격정적이고, 절제된 듯 하면서도 한없이 관능적인 탱고의 진수를 보여줬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공연을 마친 뒤 베론은 “관중들이 내 몸짓 하나하나에 반응해 매우 놀랐다”며 “탱고는 매우 창의적인 춤이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3년동안 이 공연을 준비해온 ‘레오’ 정종상(32)씨와 ‘페닌슐라’ 조명희(33)씨는 “베론은 한국의 땅게로스들이 가장 사랑하고 추앙하는 댄서”라며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서로를 인터넷 동호회 아이디로 부른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처음인 베론의 초청 공연은 순전히 이 두 사람의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다. 어느 기획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관람비만으로는 초청 비용을 대지 못해, 그 차액을 이들이 각자 나눠 부담할 예정이다.


두명이 사비들여 3년간 준비

레오는 탱고의 매력에 빠져 지난 1월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국립아카데미음악원에서 ‘반도네온’을 배우고 있다. 반도네온은 아코디언과 비슷하게 생긴 탱고 연주용 악기로, 애수를 머금은 어두운 음색이 특징이다. 그는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네오니스트’인 셈이다. 레오는 “영화 <탱고 레슨>을 보면서 탱고에 대해 달뜬 첫사랑 같은 갈망을 품게 됐다”며 “파블로 베론의 천재적인 춤 솜씨를 다른 회원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레오와 페닌슐라가 운영하는 다음 카페 ‘땅고 아르떼’의 회원은 2800여명. 비슷한 규모의 동호회가 두어개 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탱고는 여전히 마이너 문화다.

베론의 공연 전에는 땅게로스들의 파티인 ‘밀롱가’가 열렸다. 관능적인 탱고 음악을 배경으로 수십쌍의 남녀들이 ‘얼싸 안고’ 춤을 추는 모습은 퍽 낯선 풍경이었다. 카메라를 피해 얼굴 숨기기 급급하던 9시 뉴스의 한 장면은 추억이 된 지 오래였다.

하체를 밀착시키는 볼륨댄스와 달리, 탱고는 상체를 붙여 알파벳 에이(A)자 모양을 만든다. 남자의 오른손은 여인의 상체를 가볍게 끌어당긴다. 음악에 취해 얼굴을 맞댄 커플도 있다. 20대 여인과 초로의 아저씨가 파트너가 되고, 중년의 부인이 20대 청년과 한 쌍이 된다. 나이와 직업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 다만 함께 춤을 추고 싶은지가 중요할 뿐.

“탱고엔 정해진 틀 없어요”

춤은 남자가 먼저 권한다. 아르헨티나에선 먼 발치에서 눈을 먼저 맞추고, 여자 쪽에서 미소를 보내면 승락을 뜻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냥 말로 해결한다. 한번 손을 잡으면 세곡을 추고 헤어지는 게 보통이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다 탱고로 석사논문을 썼다는 한아영(24)씨는 “‘3분간의 연애’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탱고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전직 고위공무원 출신의 땅게로(남자 탱고 댄서) 비너(58)는 “집에서 저녁 상을 물리고 아내와 함께 춤을 춘다”며 “원래 비좁은 술집에서 태어난 춤이라 넓은 공간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탱고는 19세기 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선술집이나 사창가, 바에서 시작된 춤이다. 스페인과 아프리카 등으로부터 건너온 이민자들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춤으로 승화시켰다.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가우초(목동)들도 가세했다. 칼부림이 난무하는 도시의 뒷골목에서 탱고는 남성다움을 뽐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탱고의 생명은 즉흥성에 있다. “탱고에는 어떤 정해진 틀이 없어요.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죠.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가 ‘탱고는 가슴으로 추는 춤’이라고 말했잖아요. 스텝이 엉키면 그때부터 다시 추면 됩니다.”

허만석(57)씨가 한아영씨와의 ‘3분간의 연애’를 끝내고 와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그는 탱고가 좋아 지난해 3개월동안 아르헨티나에 다녀왔다. 허씨는 “살사나 룸바 같은 라틴댄스를 하던 젊은이들이 싫증이 나면 탱고를 찾아 온다”고 말했다.

탱고는 춤과 문학, 음악의 종합예술로서 잡종교배적 본성을 갖고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시로, 루이사 발렌수엘라는 소설로 탱고를 노래했다. 까를로스 가르델이나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탱고라는 음악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20세기는 탱고의 시대”라고 못박았던 무용학자 쿠르트 작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탱고는 그렇게 서서히 다른 춤들을 잠재우면서, 전 세계에 땅게로스들의 영토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글 이재성 기자, 사진 서지형 <씨네21>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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