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가수들은 새로운 팬보다
당시 음악 청취자 기반으로 활동
‘나이든 세대의 트로트’ 같은 향수
당시 음악 청취자 기반으로 활동
‘나이든 세대의 트로트’ 같은 향수
“학교와 감옥이 있는 한 로큰롤은 영원하고 연애와 이별이 있는 한 발라드는 영원하다.” 강헌 음악평론가는 발라드의 생명력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우리나라에선 아이돌도 발라드를 부른다. 발라드는 익숙한 구조와 사운드에 기반한 음악이기 때문에 보수적이지만 보편적인 힘이 있다. 누구나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고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발라드의 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을 보면 그 공식에 회의를 느낄 만하다. “가을은 발라드의 계절이었지만 최근 7~8년 전부터는 그 공식이 깨졌다.”(강헌) <라디오스타> ‘발라드는 돌아오는 거야’ 특집(<문화방송> 10월28일 밤 방송)에서 케이윌은 자신을 ‘발라드가 차트에 없는 시절 꾸준히 발라드를 하는 가수’라고 표현했다. 9년 만에 컴백한 신승훈은 지난 29일 공개된 음원의 타이틀곡이 77위(케이티뮤직 음악사이트 지니 자료)를 기록하는 등 인지도에서 고전하고 있다. 컴백한 가수들도 신곡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김동률은 2015년 발표한 앨범에서 아예 예전 발표 곡을 타이틀로 내세웠다.
올해 컴백한 발라더 중 예외는 임창정이다. ‘또 다시 사랑’은 각 음원 차트에서 상위에 올라 있고 10월9일 <뮤직뱅크>(한국방송2)에서 14년 만에 1위를 차지했다. 임창정은 <한겨레>와의 지난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임창정스런 멜로디와 가사가 공감 가는 부분이 맞아떨어져서 많은 분들이 들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히든싱어>(제이티비시)에서 ‘또 다시 사랑’을 부를 수 있었던 것, 도플싱어 가요제에서 베스트 커플로 선정돼서 관심이 커졌다는 것, 계절과 맞았다는 것 등등”을 성공 이유로 들었다. 강헌 평론가는 가사에 강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임창정은 젊은 가수가 아니다. 노래의 스토리 자체가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한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을 느낄 만한 내용이다.”
임창정은 몇년간 트로트 ‘문을 여시오’ 등을 발표하며 다른 발라드 컴백 가수와 달리 방송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이승철이 방송에서 노래한 걸 들은 한 초등학생이 “장래가 촉망되는 가수”라고 했다는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도 있지만, 임창정만은 ‘왕년의 가수’에서 예외라는 것이다.
발라드는 한국적 토양이 가미된 ‘장르’다. ‘사랑의 애가(哀歌)’를 통칭해서 불렀다. 장르가 세분화되어가면서 예전에는 발라드라고 불렸을 노래들은 팝이나 아르앤비, 소프트록으로 불린다. 현역이랄 수 있는 ‘발라드의 황태자’ 성시경도 데뷔 15년차다. 성시경이 황태자라면 ‘찰스 황태자’ 격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지금 90년대 가수들은 새로운 팬들을 만드는 게 아니라 90년대 음악 청취자들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들을 전통적인 팝 발라드 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최근 음악 흐름이 흑인 음악 쪽으로 넘어가면서 아르앤비나 솔(soul)풍 발라드가 대세를 이룬다. 아니면 인디는 어쿠스틱 발라드를 주로 부른다. 젊은 세대 발라드는 기존과 확실히 다르다. 지금 나이든 세대가 트로트를 들었던 것처럼 90년대 베이비붐 세대는 옛날 발라드를 듣는다”고 말했다. 발라드는 30~40대의 ‘트로트’가 되어가고 있다.
구둘래 남은주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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