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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터널을 빠져나가자, ‘락국’(樂國)이었다

등록 2016-07-31 14:01수정 2016-07-31 21:31

일본 니가타현 스키장에서 열리는 20회 후지록페스티벌 방문기

드넓은 공간에 13개 무대 마련…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무대들 많아
집단자위권 반대 인물의 토크쇼 참석으로 ‘음악과 정치’ 논쟁 불러와
후지록페스티벌의 텐트촌 모습.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후지록페스티벌의 텐트촌 모습.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후지산이 어디 있나요?” 후지록페스티벌(후지록페)에 가서 후지산 찾으면 낭패다. 대신에 긴 터널이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첫 문장이 닿는 곳 니가타현 유자와초에서 후지록페는 열린다. 물론 한창의 여름이다. 7월22~24일 제20회 후지록페를 다녀왔다. 텐트를 쳐놓고 공연을 보다가 맥주를 마시다가 했다. 10여만 관객과 함께 록의 열기에 흠뻑 빠져든 사흘이었다. 그러니까 터널을 빠져나가자, ‘록국’(綠國), ‘락국’(樂國)이었던 거다.

■ 20년 전 매웠던 그날 3일째 마지막날 밤 9시 메인 무대인 그린 스테이지에 레드핫칠리페퍼스가 나타났다. 민소매 차림 채드 스미스의 압도적인 드럼 비트가 한창 진행되다가 하얀 옷을 위아래로 빼입은 앤서니 키디스가 갑자기 나타났다. 인트로에 이어 첫 곡으로 부른 노래는 올 6월에 발표한 24번째 정규앨범 <겟어웨이>(The Getaway)의 ‘굿바이 에인절스’(Goodbye angels)다. 이어진 노래는 ‘대니 캘리포니아’(Dani California). 후지록페 쪽이 20회를 맞아 낸 기념앨범의 첫 곡이기도 하다.

20년 전 첫 후지록페 단 한 팀의 헤드라이너가 레드핫칠리페퍼스였다. 이틀간의 1회 페스티벌은 진짜 ‘후지산’에서 열렸다. 태풍이 일정에 맞춰 먼저 도착했다. 비바람이 거세서 뭐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일정이 없었다. 하지만 앤서니 키디스는 팔 부상을 입고서도 ‘악동’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며 첫날 공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첫번째 후지록페의 공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태풍으로 이틀째 일정은 취소된다. 우천에 전혀 대비되지 못한 것에 비난이 빗발쳤다. 취소하고 난 다음날은 해가 났다나 어쨌다나. 2회는 날씨 영향을 덜 받는 도쿄로 옮겼다가, 3회부터는 지금의 니가타현 나에바 스키장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름만은 여전히 ‘후지’다.

20회 그린 스테이지는 이동 공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이 가득 들어섰다. 그 시간대에 다른 12개 스테이지의 공연은 잡혀 있지 않았다. 아직도 현역으로 있어줘서 고마운 거장에 대한 페스티벌 주최 쪽의 마음이 담긴 스케줄이었다. 록페스티벌에선 이례적인 앙코르가 이어졌고, 앤서니는 건재한 팔을 과시하는 듯한 물구나무까지 선보였다.

20주년을 김에 새긴 라멘.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20주년을 김에 새긴 라멘.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운동권이 몰려왔다 지난 6월21일 후지록페 라인업이 발표되자 일본 내에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의 중심인물 오쿠다 아키가 라인업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실즈는 지난해 일본 집단자위권 법안 반대 시위를 대대적으로 펼친 젊은 운동단체다. ‘음악에 왜 정치를 끌어들이느냐’는 불만 섞인 반응이 에스엔에스를 통해 흘러넘쳤고, <아사히신문>이 ‘록페에서 정치적 주장을 한다?’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음악에서 정치를 빼는 게 더 이상한 일”(칼럼니스트 오다지마 다카시) “정치 관여가 안 된다느니 말하는 것은 청취자의 자유, 그것을 들을지 말지도 아티스트의 자유”(록밴드 ‘아시안 쿵후 제너레이션’의 리드보컬 고토 마사후미) 같은 반론들도 펼쳐졌다.

오쿠다가 참여한 것은 둘째날 ‘아토믹 카페 토크’라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국제 환경 비정부기구(NGO)인 ‘포에 재팬’(FoE Japan)의 멤버와 핵 전문가가 함께 ‘보안법, 오키나와, 헌법, 원자력발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후지록페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비슷한 행사를 해오고 있다. 후지록페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토크쇼가 열린 ‘집시 아발론’ 무대는 폐식용유를 재활용해 생산한 전기를 사용한다. 화장지는 지난해 분리수거를 통해 모은 종이를 재생한 것이다. 보온병 등을 가져온 관객에게는 무료로 차를 나눠준다. 반핵과 세계 빈곤, 재생에너지 등을 내세우는 엔지오 부스들도 여럿 차려져 있다. 후지록페 쪽에서는 논란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록 스피릿’이 일반인 사이 논쟁거리로 떠올랐으니 후지록페 쪽은 슬그머니 웃지 않았을까.

‘대만독립’의 정치적인 주장을 내세운 텐트도 보인다.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대만독립’의 정치적인 주장을 내세운 텐트도 보인다.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후지록페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들 후지록페는 참여 아티스트가 200여명을 헤아린다. 주말인 23·24일 각각 4만 관객이 입장하는 등 전야제까지 12만5천명이 다녀갔다. 20회를 맞은 올해까지 누적 관람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메인 스테이지인 그린 스테이지, 곤돌라를 타고 가는 데이드리밍까지 13개의 스테이지가 있다. 그린 스테이지와 두 번째 규모의 화이트 스테이지까지 걸어서 10분 걸릴 정도로 넓다.

무엇보다 강점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뮤지션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개최되는 한국의 지산밸리록페스티벌과 라인업을 공유하지만, 후지록페에서 더 많은 뮤지션을 만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국보급 밴드로 불리는 시규어 로스, 컨트리록의 거물 밴드 윌코, 쾌감 넘치는 연주력을 보여주는 익스페리멘털 록 밴드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 노래 없이 재능 넘치는 연주의 끝을 만끽하게 하는 배틀스 등이 올해는 후지록페만 찾았다. 7월 말 서울에서 단독공연을 한 벡(Beck)은 둘째날 헤드라이너로 섰다.

2014년 한국 공연이 예정되었다가 취소된 익스플로전 인 더 스카이의 공연 모습.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2014년 한국 공연이 예정되었다가 취소된 익스플로전 인 더 스카이의 공연 모습.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두 자이니치의 공연도 반가웠다. 자이니치펑크는 리더인 하마노 겐타가 자이니치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한 적 있다. 자이니치 ‘핑크’인가, 분홍색 옷을 입은 리더인 하마노 겐타는 한낮 무더위 공연에도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집시 아발론에서 무대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김우용(金佑龍)은 “자이니치입니다. 케이팝은 아니지만요”라는 멘트를 하고 신나는 어쿠스틱록을 들려주었다.

내년 일정을 공지한 알림이 게이트에 새겨졌다.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내년 일정을 공지한 알림이 게이트에 새겨졌다. 니가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일본 록밴드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4년 첫 앨범을 빌보드차트에 진입시킨 아이돌 밴드 베이비메탈은 일본의 ‘국보’가 되어가고 있다. 애니메이션풍 노래를 메탈사운드 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베이비메탈 공연에 앞서 진행요원들은 확성기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좁혀 앉아달라”고 당부하고 다녔다. 과연 사이 공간 없이 꽉 들어찬 일본 관객들은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했다. 공연 도중 비가 찔끔 내렸다. 거의 유일하게 춤을 추는 밴드인 이들의 무대를 진행요원들은 흰 타월로 틈틈이 닦았다. 넘어지기는커녕 삐끗하는 불상사도 없었다.

니가타/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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