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데뷔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빅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6년 8월19일 빅뱅은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와이지 패밀리의 10주년 무대에 섰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풋풋하던 소년들이 청년이 되었다. 멤버들의 미래에 걱정이 많지만 빅뱅은 팬들과 함께 대대적으로 10년을 축하한다. 2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6만여 아시아 팬을 불러 여는 콘서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월드투어를 다큐멘터리로 구성한 영화 <빅뱅: 메이드>를 6월 말 개봉했고 전시회도 열고 있다.
한쪽에 또 다른‘원로가 있다. 원더걸스는 7월 미니앨범으로 컴백했다. 2007년 2월 데뷔했으니 10년에서 6개월이 모자란다. 언니들은 살아 있었다. 미니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와이 소 론리’는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7월 월간 차트 1위에 등극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부침의 세월을 겪고‘아이돌을 넘어선 아이돌’로 살아남은 두 그룹을 지면에 모았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에 한국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 10년 전 양현석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리얼다큐 빅뱅>(빅뱅의 탄생기를 담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첫 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데뷔도 하지 않은 연습생들을 두고 한 이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2011년 <엠티브이>(MTV) 유럽뮤직어워드(EMA)에서 받은 ‘월드와이드액트’ 상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13개국 32개 도시를 돌며 1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월드 투어’와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다 부문(올해의 노래 상, 최우수 팝 노래 상, 그룹 부문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상) 수상까지, 국내는 물론 아시아, 북미권에서 빅뱅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해체하거나, 부침 속에 존재감이 희미해진 다른 아이돌과는 확연히 다른 역사를 빅뱅은 지금 써내려가고 있다.
6월30일 개봉한 음악 다큐멘터리 <빅뱅 메이드>의 한 장면.
무엇이 달랐을까. 음악평론가 김윤하는 먼저 10년이라는 시간에 주목한다. 그는 “신화 정도를 빼면, 10년을 멤버 교체 없이 버틴 아이돌은 빅뱅이 유일하다. 10년 동안 같은 팀을 유지한다는 그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한다. 작사·작곡·프로듀싱 등 자가발전이 가능한 지드래곤, 태양, 탑, 대성, 승리, 다섯 멤버의 능력치는 이미 “와이지의 기획력을 넘는 수준”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청년들이 음악뿐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유려하게 자아를 확장 중이다.”
“개별·유닛 활동이 가장 기대되는 그룹은 빅뱅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은 “빅뱅은 어떤 멤버들끼리 묶어도 상품이 되는 강점이 있다”고 말한다. 음악 자체에 대한 평가도 높다. “지난해 발표한 ‘배배’ ‘뱅뱅뱅’의 경우, 흑인음악 스타일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음악적 고집을 보여주는 파격이 있다. 야하지만 유쾌한 찹쌀떡 같은 가사가 대표적이다. 아이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스스로의 한계도 뛰어넘으며 성장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빅뱅의 다섯 멤버는 부쩍 진지해진 모습이다. 6월30일 개봉한 음악 다큐멘터리 <빅뱅 메이드> 속 멤버들은“100% 완벽한 공연이 없기 때문에 디테일이라도 신경 쓰자는 것”(탑)이라며 조명 밝기부터 영상 속 타이포그래피까지 직접 손본다. 지드래곤은 부상을 입고도 “음악이 나오면 몸은 자연스레 반응한다”며 의연히 무대에 오른다.
빅뱅 데뷔 10주년 기념 전시회 ‘A TO Z’에 걸린 멤버들의 사진.
5일부터 10월30일까지 서울 성동구 ‘에스(S)팩토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빅뱅 메이드>에 이은 두 번째 데뷔 10돌 기념행사다. 지난 10년을 알파벳 A에서 Z까지 총 26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특히 ‘노란 야광봉’을 10년간 흔들어 준 팬들을 향한 애정을 듬뿍 담았다. 전시장 들머리에 팬들의 편지 등이 적힌 콘크리트 담벼락을 가져다 놓은 것도 그런 이유다. “예전 사옥인 ‘덕양빌딩’ 주차장 담벼락이다.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서 이건 무조건 떼와야 한다고 말했다.”(4일 기자간담회에서 태양) 담벼락 반대쪽에는 멤버들이 직접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아 그림을 그렸다.
지난 10년에 대한 감사, 앞으로 10년에 대한 고민이 최근 빅뱅의 화두다. “이제야 팬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하루 행복하다”는 탑부터, “언제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슬프다”는 승리, “10년이 지나도 무대는 여전히 힘들고 버겁다”는 대성,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태양, “꼭 앨범이 아니라도 전시, 필름 등 다채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지드래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군 입대 여부도 빠질 수 없는데 지드래곤은 “군 제대 이후에도 언제까지 빅뱅으로 함께할 것이란 확신이 있다”는 말로 향후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네버 스톱 메이킹 뮤직(Never stop making music)!” <빅뱅 메이드>에 나온 한 해외 팬의 말이다. 빅뱅은 멈출 생각이 없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사진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걸스의 데뷔일 2007년 2월10일은 걸그룹 붐의 발원일로 기억된다. 원더걸스를 시작으로 카라, 소녀시대, 브라운아이드걸스, 포미닛, 투애니원, 티아라 등이 뒤따랐다. 핑클이나 에스이에스(S.E.S) 등 1세대 아이돌 걸그룹이 ‘청순발랄’ 이미지였다면, 이 걸그룹들은 ‘섹시미’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이들을 따라 이전의 ‘오빠 팬’과 다른 삼촌 팬들이 대거 유입됐다. 원더걸스가 그 중심에 있다.
데뷔 당시 원더걸스는 중3 소녀가 셋(소희, 현아, 선미)이나 포함됐다. ‘텔미’에서 소희가 입을 가리며 ‘어머나’를 하는 모습은 삼촌 팬들의 가슴을 쿵쿵 뛰게 했다. 음악 전문 블로거 이규영은 “원더걸스 열풍은 예쁘고 귀여운 10대 소녀들을 보면서 하악거리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적절히 꿰뚫은 마케팅의 성공 사례”라고 못박았다.
2008년 하반기 큰 인기를 끈 원더걸스 ‘노바디’
이후 원더걸스는 어느 걸그룹보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다. 멤버 탈퇴만 세 차례를 겪었다. 선예는 ‘현직 아이돌 최초 결혼식’도 치렀다. 빌보드 150년 역사상 최초로 한국 뮤지션이 빌보드 핫100에 진출하는 기록을 남겼지만, 후속타를 내지 못하고 미국 진출은 ‘실패’로 결론이 났다.
그사이 2세대 아이돌 걸그룹의 세대교체도 빠르게 진행됐다. 에이오에이, 여자친구, 레드벨벳, 트와이스 등 새로운 소녀들이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런데 2015년 원더걸스는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리면서 다시 대중음악의 전면에 등장한다. 원년 멤버인 선미도 합류했다. 3집 앨범 <리부트>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을 던진다.
아이돌 음악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 미묘는 이 컴백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평론가나 음악 기자, ‘음악 덕후’들에겐 이 커다란 낚시 혹은 농담에 대해 분개하거나, 아니면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졌다. 그리고 상당수는 후자를 선택했다.”
7월 나온 원더걸스 미니앨범 ‘와이 소 론리’
지난달 5일 나온 미니앨범 <와이 소 론리>는 한발 더 나아간다. 멤버들이 작사·작곡한 곡을 타이틀로 내세운 것이다. 이전 앨범에도 멤버들이 참여하긴 했지만, 타이틀곡은 처음이었다. 박진영은 에스엔에스에 이런 글을 남겼다. “탈박 축하! 자랑스러워~♡”
<와이 소 론리>는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았다. 발표 뒤 한달이 됐지만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수위를 지켰고, 7월 한달 음원 차트 1위(엠넷, 케이티뮤직)를 차지했다. 10년 된 걸그룹으로서 ‘현재’를 산다는 것은 어떤 트로피보다 값지다. 음악평론가 최지선은 “원더걸스는 걸그룹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현재 최후로 살아남은 걸그룹이 되었다”고 평했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은 2014년 발표된 선미의 <풀문> 앨범과 예은(핫펠트)의 <미?> 앨범에서 ‘원더걸스의 변화’를 감지했다고 한다. “영미권의 트렌디한 음악을 위주로 한 앨범들이었다. 특히 <미?> 앨범에서 마음이 가는 곡은 모두 예은이 작곡하거나 프로듀싱한 곡이었다.”
그는 원더걸스의 ‘밴드’ 변신이 단순한 형태 변화를 넘어선 멤버 역할의 진화라고 본다. “노래 만들고 노래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고, 공동작업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더 복잡한 형태의 ‘연출’을 한다. 콘셉트까지 만들었다. 이런 뮤지션은 팝 역사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멤버들이 의견을 내서 만든 <와이 소 론리>의 뮤직비디오에선 이 밴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네 여자는 남자 마네킹을 때리고 입을 막고 수갑을 채워 끌고 간다. 유빈·혜림·선미가 쓴 가사는 “뭔가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별거 없어 넌 다른 게 없어”라고 남성 연인을 신랄하게 질타한다. 남성이 바라는 형태의 ‘섹시미’에서 여성 주체적인 ‘섹시미’로 바꾸겠다는 상징적 선언으로 들린다.
다시 1세대 걸그룹들과의 차별점이 확실해졌다. 과거 걸그룹들이 소속사의 결정에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내맡겨야 했다면, 원더걸스는 이제 자신의 색깔을 스스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원더걸스는 이제 모든 크리에이티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자기실현’을 향해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 성인식을 치르고 어른이 된 것이다.”(차우진)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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