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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저질들’이 부르는 혁명·혁명·혁명

등록 2016-08-10 16:05수정 2016-08-10 18:19

김태춘, 사회 비판의 직격탄 장착한 2집 앨범 <악마의 씨앗> 발매
서늘한 자본주의 비판을 담은 <악마의 씨앗>을 낸 싱어송라이터 김태춘.
서늘한 자본주의 비판을 담은 <악마의 씨앗>을 낸 싱어송라이터 김태춘.

친구는 냉동차 배달기사였다. 좋아하는 사람 있냐는 말에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했다. 요즘 그 사람을 보려고 자주 이태원을 간단다. 페이스북으로 얼굴 좀 보자며 이름이 뭐냐 물었더니 모른다 했다. 보기만 하고 이름도 못 물어보았다고 했다. “그대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얼음처럼 반짝이고… 전화라도 걸어 그대 이름 부르고 싶지만 그만 전화번호도 그대 이름도 묻지 못했네.”(‘이태원의 밤’)

인디계의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김태춘에게 ‘사랑 노래’란 그가 지어 이효리의 5집 앨범 <모노크롬>에 들어간 ‘사랑의 부도수표’ ‘묻지 않을게요’가 정도가 다인 줄 알았다. 7월 중순 나온 자신의 2집 앨범 <악마의 씨앗>에는 친구에게 들은 간절하고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한 곡이 들어 있다. 그런데 앨범을 듣다 보면 이 말랑한 것도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자본주의란 악마가 인간에게 전한 씨앗이라는 ‘악마의 씨앗’, 방송이 사람을 쓰레기로 만든다는 ‘모든 방송국을 폭파시켜야 한다’, 새마을 운동을 빗댄 ‘뉴타운 무브먼트 블루스’, 독재자의 장례식을 그린 ‘독재자에게 죽음을’ 사이에 끼어 있으니. 한 음악 블로거는 “요즘 세상에 무슨 험한 꼴을 당하려고 이렇게까지 솔직한 건지”라고 이 앨범의 리뷰를 시작한다. 이제는 희귀해져서 귀해진, 사회 비판의 직격탄을 장착한 <악마의 씨앗> 앨범을 들고 김태춘이 돌아왔다. ‘라이너스의 담요’의 연진은 “저 멀리 말 타고 총 쥐고 달려오는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김태춘”이라고 말한다.

공연에서 레퍼토리로 삼던 곡이 6곡, 이번 앨범에 넣기 위해 새로 작업한 곡들이 6곡, 합쳐 12곡이 들어 있다. 주로 앞쪽에 배치된 새로운 6곡은 <악마의 씨앗> 앨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데, 5번째 트랙 ‘독재자에게 죽음을’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컨트리·블루스 노래에 이어, 그 목소리 그대로 민요 ‘상여가’의 음을 따 부르는 노래다. 그게 민요와 블루스가 원래부터 같았던 듯 어울려 들어간다. 김태춘은 민요와 블루스의 절묘한 조화에 대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미국의 전국 노동요를 채집한 걸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민요랑 비슷한 점이 많다. ‘상여가’는 관을 들고가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미국 노동요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부르는 비슷한 톤의 노래가 있더라.” 원래의 ‘상여가’ 가사는 가는 이의 원통함과 미련이 표현된 데 비해, ‘독재자에게 죽음을’에서는 독재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어여차 조심하소 길이 멀다 조심하소 왼손으로 도끼를 잡고 나무를 잘라 관을 짜서 오른손으로 낫을 잡고 관을 메고 다리를 넘네.”

1집과 2집 사이 사회 비판은 절망적인 톤으로 변했다. 약한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이 1집은 ‘패배자들’인데, 2집은 ‘저질들’이다. 예전이 승부가 있는 객관적인 세계라면, 지금은 도덕적 비난까지 받으며 ‘까이는’ 세상이다. 김태춘의 2집의 첫 곡은 ‘악마의 씨앗’인데, 1집 앨범 <가축병원블루스>의 시작은 ‘악마와 나’로 둘 다 ‘악마’가 들어간다. 블루스 노래에 많이 나오는 ‘악마’(devil)를 종교적인 의미를 빼고 갖고 온 말이다. ‘악마와 나’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악마에 비유했다면, ‘악마의 씨앗’에서는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방식이 ‘악마’라고 독하게 말한다.

김태춘은 이전 레이블을 나와 2집 앨범을 스스로 차린 1인 레이블 ‘허수아비 레코드’에서 냈다. 홈레코딩으로 완성하고 앨범 커버 등의 작업은 아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내가 온전히 할 수 있는 게 뭔지 보고 싶었다.” 3월부터 앨범을 준비하느라 생계를 위한 일을 거의 못했다. 앨범이 나오고 나니 “뿌듯한데 먹고 살 일이 걱정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제 레슨 전단지도 붙이며 다시 팍팍한 자본주의 생활로 복귀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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