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수(왼쪽)가 동료 배우 정인기와 함께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서울환경영화제 제공
아저씨들이 나이 먹고 노래와 늦바람에 빠졌다.
배우 박길수(50)는 요즘 노래 부르는 데 더 열심이다. 예명은 ‘꿩박’이다. <국제시장> <부러진 화살> 등 수십편의 영화와 <해를 품은 달> <옥중화> 등 드라마까지 넘나드는 그다. 그런 가운데서도 ‘빵’ 같은 홍대 클럽과 라이브 카페 등에서 월 2회가량 꾸준히 공연한다. 세월호, 위안부 소녀상 집회,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집회 등에도 참여해 노래를 들려준다. 그걸로도 모자라다 싶으면 홍대 앞 거리 버스킹도 불사한다. 지난 10월 중순에는 생애 첫 1집 앨범 <박길수-지가 무슨 한대수인 줄 알구>를 냈다.
“가수는 젊을 때부터 꿈이었죠.” 애초 가수가 되려고 학원에 등록했는데 사기당하고 힘 빠져서 대학로를 걸어가는데 단원 모집 포스터를 보고 극단에 들어갔다. 5년 전 친구가 권해서 트로트 곡을 하나 녹음했지만, 묻혔다.
그 얼마 뒤 기타 선생님을 만났다. 뒤늦게 배운 기타에 맞춰 노래를 하니 음악이 솟아났다. “하루에 한 곡씩 노래가 나왔다. 어쭙잖게 노래를 만드니까, 홍대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서 3년여 전부터는 홍대 앞을 무대 삼아 본격적으로 노래 부르기에 나섰다.
입말을 그대로 노래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1집의 ‘잡놈’은 연극조의 노래다. ‘넌 천상 잡놈이야’라고 비난조로 읊조리면 다른 하이톤의 목소리로 “그게 뭐 어때서 사람 냄새 나잖아/ 풍류를 알잖아/ 멋을 알잖아”라고 대꾸한다. 타이틀곡 ‘지가 무슨 한대수인 줄 알구’는 “대수 형님과/ 딜런이 형님과/ 언제 밥 한끼 먹었음 좋겠다”고 소박하게 읊조린다.
아직 초보 뮤지션에게 공연 섭외도 별로 없고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노래방에 안 가도 내 노래를 부르니 좋다”는 소박한 기쁨은 진심이다.
박길수가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잔의 룰루랄라 제공
아저씨 가수 구자형(62) 역시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시를 모아 시집을 내기도 했고, 소설도 썼다. 하지만 원래부터 꿈은 ‘가수’였다. 1975~78년 일주일에 한 번 언더그라운드 노래 공연 ‘참새를 태운 잠수함’을 이어나갔다. 스스로도 노래했고, 전인권, 한영애, 강인원, 남궁옥분에게 곡을 주기도 했다. 어느 순간 보니 혼자였다. 노래로 돈을 벌고 싶진 않아서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등의 라디오 대본이 그의 손을 거쳤다.
“노래 부르는 걸 잊어버릴까봐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음반을 발표했다.” 1집 <난 널>(1990년), 2집 <존 레논을 위하여>(1997년), 3집 <바람이 가르쳐 준 노래>(2006년)를 띄엄띄엄 냈다. 2014년에는 좀 달랐다. 자신이 음악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음악이 자신을 선택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세끼 밥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75일 동안 하루에 한 곡씩 곡을 썼다. 곡을 추려 <음악이 돌아다닌다>(2014년), 올 10월에 <코끼리>를 내고, 단독콘서트도 열었다.
방송작가를 하던 구자형씨가 음악에 집중을 하자고 결심한 뒤 최근 낸 5집 앨범 <코끼리>. 구자형 제공
“속도를 더 내서 내년 초에 6집 앨범을 낼 계획이다.” 그는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음악운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시대를 증언하는 포크 음악을 하고 싶다. 그 역시 박길수처럼 밥 딜런을 마음에 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해볼까 하고 알아보고 있다.” 밥 딜런 노래에 관한 책 <누구도 나처럼 노래하지 않았다>도 다음달 출간 예정이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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