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나무가 되어> 앨범 낸 조동진. 조동진은 “기타를 집어넣는 데 10년 다시 꺼내는 데 10년 걸린 셈이네”라고 후배들에게 말했다. 푸른곰팡이 제공
포크음악의 거장 조동진(69)이 새로운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나무가 되어> 앨범은 그의 5집 <조동진 5>로부터 20년의 세월을 헤아려 나왔다. 앨범 음원이 공개된 8일 강남구 대치동 한 음악홀에서 음악감상회가 열렸다. 자리에 참석한 조동진은 앨범 감상에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다. 소속사 푸른곰팡이가 들려준 후배들과의 녹음된 대화에서 “그렇게 빨리, 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을 줄 몰랐어. 기타를 집어넣는 데 10년 다시 꺼내는 데 10년 걸린 셈이네”라고 간단하게 소감을 들려줄 뿐이다.
아스라한 목소리는 그대로지만 소리는 더 고즈넉해졌다. 곡들에는 자연의 풍화와 세월을 기록한 듯한 소리들이 앞에 있다. 노래들에는 뚜렷하게 ‘시간’이 기록된다. 음악평론가 신현준(성공회대 교수)은 가사 속에 ‘시간’이 많이 보인다며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인간의 존재와 시공간 사이의 대면이 이보다 진지했던 적은 없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앨범에서 조동진에게 시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서정적이되 덧없는 시간이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어떤 종류의 전형적 문학적 서정이 두르는 신비주의나 상투적 휴머니즘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고 도취나 나르시즘 없”는 것을 조동진의 특별함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주어는 절박한 술어를 가졌다. ‘별빛 내린 나무’는 ‘이전처럼 움직일 수가 없’고 ‘하늘 가린 나무’는 ‘예전처럼 노래할 수 없’다(‘나무가 되어’). 젊은 시절부터 소름돋게 감지하던 시간의 덧없음(‘나뭇잎 사이로’의 ‘어둠은 벌써 밀려왔나(…) 그 빛은 언제나 눈 앞에 있는데/ 우린 또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야’)에 대한 서정이 나이 든 어른의 눈 앞에서 재차 확인된다.
그렇게 조동진 식으로 추상적으로 사용하던 ‘시간’이 구체적으로 붙들리는 때가 있다. ‘1970’ ‘이날이 가기 전에’ ‘그날은 별들이’에는 시간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그날들은 ‘어떤 이와의 기억’과 연관된다. ‘1970’ 작곡 메모에서 조동진은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해(1970년)에 스무살이 된 여인을 만났고 혹독했던 겨울을 견뎌야 했기에 통기타로 전향했다”고 말했다. 어떤 하루는 반복된다. “이날이 가기 전에 내가 그리던 세상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이날이 가기 전에’) “그날은 시간도 멈춰버”렸다.(‘그날은 별들이’)
앨범은 ‘앞서 떠나간 나의 아내 김남희를 기억하며…’라고 헌사했고, 음악평론가 김학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앨범을 낸 계기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적시려면, 우선 자신의 잔을 넘쳐흐르게 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번 앨범은 그런 마음에 앞서 후배들과의 약속, 그리고 얼마 전(2014년 말)에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약속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1970’이 발도 까닥이게 할 정도로 앨범에 실린 곡중 가장 밝은 것은 그 붙들린 시간이 준 ‘행복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천사’ ‘향기’는 그의 대표작 ‘행복한 사람’처럼, 잔잔한 미소를 띠게 만든다.
조동진을 현재로 데리고 오는 것은 그의 실험성이다. 김형준 프로듀서는 “미니멀리즘으로 비롯되는 여러 실험적 사운드는 이번 앨범이 음원사이트에서 일렉트로닉이나 엠비언트 음악의 신보로 소개되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라고 말한다. 조동진은 “시간을 넘어 강을 흘러 나무가 되었다.”(신현준)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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