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환씨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서 무대에 올라 자신의 곡 ‘물어본다’를 열창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광장에서 시민들의 희망과 염원이 노래의 힘과 만나고 있다. 매일, 그리고 주말마다 촛불집회 무대에서 뮤지션들이 시민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며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른다. 수백만의 촛불이 ‘촛불가’와 하나가 되는 민주의 축제가 광장을 수놓고 있다.
■ 헌법 1조와 진실 광장의 히트메이커는 윤민석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그대로 가사로 삼아 그가 만든 ‘대한민국 헌법 1조’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불렸고, 세월호 집회에서 불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간결한 가사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지금도 여전히 광장에서 울려퍼진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소재로 그가 새로 만든 ‘이게 나라냐 ㅅㅂ’도 많은 이들이 부른다. 이전의 곡들처럼 간결하고 ‘하야’라는 가사가 반복되어 재미를 돋운다.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냐 (…) 하야 하야 하야 하야 하여라”
친숙한 선율을 살린 ‘노가바’(노래 가사를 바꾼 노래)는 많은 이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민중가수 연영석은 크리스마스 캐럴인 ‘펠리스 나비다드’의 가사를 바꿔 ‘그네는 아니다’를 만들었다.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가’도 쉽게 많은 이들이 따라 부르고 있다.
촛불광장 무대에 선 뮤지션들은 집회 참석자들이 같이 부를 노래들을 고안해낸다. 안치환은 18일 청계광장 ‘물러나쇼(SHOW)’ 공연에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는 꽃보다 아름다워’로 바꿔 불렀고, 이승환은 12일 3차 촛불집회에서 ‘덩크슛’을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는 가사로 바꾸기도 했다.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19일 4차 촛불집회에서 전인권은 많은 이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상록수’와 ‘애국가’를 불렀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집회 뒤 행진에서도 많이 불린다.
12일 노동당 방송 트럭에서 이루어진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딴판’ 공연. 이날 에스브이(SV) 김수빈, 라온범(춤), 박영환, 사이, 여유, 4층 총각 윤원필, 이권형, 이효정, 해피피플, 황푸하 등 11개 팀이 공연에 참여했다. 공연 뒤 차량을 경찰이 견인해 갔다.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각자의 플레이리스트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길라임이 대통령 진료 카드에 가명으로 사용된 것이 알려진 뒤 19일 광장에서는 이 드라마 주제곡 ‘나타나’를 시민들이 함께 불렀다.
노동당 방송 차량은 자유발언대를 진행하면서 틈틈이 신청곡을 튼다. 운영진은 신청곡 가운데 빅뱅의 ‘뱅뱅뱅’ 등 아이돌 가수의 노래도 많다고 귀띔한다. 대학생들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지오디의 ‘촛불 하나’를 많이 부른다. ‘다시 만난 세계’는 이화여대생들이 미래라이프대학 반대 집회에서 부르면서 소셜미디어를 타고 ‘시위가’로 새롭게 유명해졌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정확한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없어도 메타포로서 광장의 노래가 된다”고 말한다. 사회비판 메시지가 없던 노래들이 상황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승환이 세월호 집회에서 ‘물어본다’(‘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 오 그런 나이어 왔는지’)와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그게 너란 말야’)라는 노래를 불러 감동을 주었던 것이 그런 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시민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대표 노래가 없는 것이 지금의 광장”이라며 “고정된 형식을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것이 지금 광장의 역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4차 범국민 행동이 열린 11월19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가수 전인권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이번주의 촛불가는? 이번주의 집회에도 많은 뮤지션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지난주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물러나쇼’는 25일 저녁 7시엔 장소를 광화문광장으로 옮겨 열린다. 이승환 밴드, 강산에, 단편선과 선원들, 해리빅버튼 등이 공연할 예정이다. 최대 규모의 집회가 열릴 예정인 26일 저녁 9시에는 서울 파이낸스센터와 시청광장 사이에서 인디뮤지션들의 버스킹이 진행된다. 뮤지션 사이,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이 버스킹에 나선다. 노동당 방송 트럭은 밤늦게까지 집회 참가자들의 신청곡을 받아서 들려줄 예정이다. 노래가 있어 촛불은 더욱 씩씩하고 즐겁게 타오른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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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청계광장에서 이뤄진 ‘물러나쇼’ 공연에 나선 피타입. 이날 안치환, 아시안체어샷, 바드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구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