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금요일 밤에 방송되는 <고등래퍼> 6회에서는 양홍원(왼쪽), 최하민의 대결이 벌어진다. 엠넷 제공
‘간절기’ 작품 <고등래퍼>(엠넷, 본방 금요일 밤 11시)가 터졌다. 주력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스핀오프 격으로 기획된 <고등래퍼>는 고등학생 나이대의 래퍼를 대상으로 했다. 모집 때부터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엠넷 홍보팀에서는 “모집 기간이 2주였고 대상이 고1~3 나이대로 매우 좁은데다 이제 시작하는 프로그램인데 전국 각지에서 2천명이 지원했다”고 말한다. 시청률도 2월17일 2회에서부터 1.2%로 안착해 순항 중이다. 7회로 예정됐던 프로그램은 1회 연장되었다.
“<쇼미더머니>처럼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래퍼들이 나오기보다 뉴페이스들이 계속 등장하니깐 재미있네요. <쇼미더머니>는 예선만 지나도 상당수가 들어본 래퍼들이고 편집도 그들 위주로 되니깐.” 한 힙합 게시판 이용자의 말처럼 흥행의 견인차는 신선함이다. ‘뉴 페이스’들의 특징은 랩 기교에서는 “안 돼 안 돼”(정인설에 대한 매드클라운의 평)지만 10대만이 쓸 수 있는 글들로 가득하다. 1회의 첫 문은 여성 래퍼 김혜중이 열었다. “시간은 느린 듯 빨라/ 엄마보다 작았던 꼬마가 벌써 열여덟살/ 엄마가 날 올려다보네/ 난 이제 내 길을 선택할 때인데/ 공부에 대한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감/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늘 긴장하면서 살아.”
전북 완주군 한국게임과학고 1학년 최이승우는 ‘옥상’이라는 랩에서 “그녀가 생각나는 밤이라 말하고 최유정(걸그룹 아이오아이의 멤버) 사진을 찾아보는 나/ 아 저녁 냄새가 나 나 다시 들어가야 될 거 같아”라고 리얼하게 일상을 표현한다. 폐교 위기에 처한 경북 성주 가천고의 정인설 학생은 “학교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동네(대구)에 3호선이 생긴다는 말에 웃기지만 헐 세월 진짜 빠르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구린 음질 사이 삐져나온 노랜 모두 힙합곡”이라며 래퍼에 대한 꿈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혹시나 나도 래퍼처럼 가살 쓰고 뱉어대면 어떨까 무댈 하고 받는 박수 쾌감은 어떨까.”
‘10대 리얼 힙합’을 표방하는 <고등래퍼>는 “10대들의 일상을 보여주자”는 ‘고등’에 무게를 두고 시작했지만 점점 더 노련한 ‘래퍼’들의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다.
무게중심을 옮긴 것은 출연진들이 ‘악바리 래퍼’의 삶을 보여주면서다.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그림 정말 많지만 내 생각 그려낼 수 있는 물감은 이것뿐이기에”라고 말하는 최하민은 학교를 자퇴하고 상경했다. 딕키스 크루 윤병호(불리)는 “날 가르치려 들었어 이 시스템이 낳은 건 피해자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돈 냄새가 뱄어 내 몸에 말이야 넌 말하겠지 얘 쩌네 악바리라 그래 인마 나의 태생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설명한다. 오담률은 “돈 버는 엄마 어깨의 짐을 덜어드려야 해”라며 믿음직하고, 이수린도 “300만원 중 200만원 뚝 떼 엄마 아빠 줬지… 현찰 30장 난 처음 봤지 수표 알바 머니 한 달로는 절대 꿈도 못 꿔”라고 이야기한다.
<고등래퍼> 제작진은 곳곳에 장벽(룰)을 세웠다. ‘학생’을 강조하기 위해 지역 결선 뒤 자퇴한 학생들에게도 교복을 입혔고, 이미 래퍼로 활동하는 이들도 모두 본명으로 출전하고 호명하도록 하면서 이름 뒤에 ‘군’, ‘학생’을 붙였다. 하지만 “이 바닥에 인생 전체를 걸어봤던”(윤병호) 래퍼들은 <고등래퍼>를 경기의 유일한 룰이 ‘실력’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고등래퍼’ 아닌 그냥 ‘래퍼들’의 신선한 복수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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