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한국에서 첫 콘서트를 가졌다. 현대카드 제공
20여년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정규 7집 음반 <어 헤드 풀 오브 드림스> 월드 투어로 드디어 한국을 찾은 밴드 콜드플레이는 명성만큼의 공연을 펼쳐 보이고 돌아갔다. 데뷔 20년차 밴드, 누적 음반 판매량 8,000만장 이상, 그래미상 7회 수상과 브릿 어워드 9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은 잠시 잊어도 좋다. 이제는 원래 하루로 예정되었던 첫 내한공연의 인터넷 예매에 무려 90만명이 몰리게 하고, 팬들의 열기로 공연을 하루 더 열게 만든 밴드라는 사실이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을 직접 보는 행운을 잡은 9만여명의 관객들은 콜드플레이의 첫 번째 내한공연을 빛의 향연으로 기억할 것이다. 빛은 무대 위에서만 넘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레이저와 불꽃, 조명으로 쏘아올린 빛이 여느 대형 콘서트처럼 넘치게 흘러내렸다. 더 많은 빛은 관객들에게 나왔다. 공연 전에 미리 나눠준 엘이디 발광 팔찌 ‘자일로 밴드’ 덕분이었다. 무선 신호로 조율되는 자일로 밴드는 곡마다 흰색과 노란색, 빨간색, 녹색, 보라색 등을 내뿜으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을 빛의 바다로 넘실거리게 만들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 자일로 밴드는 콜드플레이가 연주할 때마다 그 곡에 맞는 빛깔과 리듬을 부여해 어둠 속 관객들 한 명 한 명을 빛으로 호명했다. 콜드플레이가 빛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단지 한 사람의 관객이었을 이들이 자일로 밴드와 함께 거대한 빛의 파노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색채와 리듬은 자일로 밴드로부터 나왔지만 그 많은 관객들이 없었다면 파노라마는 완성될 수 없었다. 지난 겨울 광장을 밝혔던 촛불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호응과 열망은 스스로를 빛나게 했고, 그 빛이 모이고 모여 서로의 존재가 장엄이 되고 감동이 되는 장관을 콜드플레이 공연에서 다시 연출했다.
15일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내한공연에서 크리스 마틴. 현대카드 제공
그럼에도 단지 멋진 연출이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빛의 바다에서 콜드플레이가 부른 노래는 체제로부터 상처받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고 껴안으며 그 빛을 희망과 낙관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콜드플레이가 보컬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로 서정적인 노래를 이어나갈 때, 그 노래들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무하마드 알리의 연설이 포함되었던 ‘에버글로’나 힘든 당신을 어루만져 주겠다는 ‘픽스 유’, 대표곡 ‘비바 라 비다’와 희망과 가능성을 담은 ‘업&업’까지 이어진 두 시간의 공연은 음악으로 교감하고 기대고 환호하며 충만해지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자유롭고 세련되게 오간 콜드플레이는 자신이 얼터너티브 록 밴드의 울타리에 머무는 밴드가 아님을 증명했다. 특히 ‘파라다이스’와 ‘힘 포더 위크엔드’를 비롯해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폭발한 곡들은 공연장을 순식간에 클럽으로 변화시켰다. 연주력을 뽐내기보다는 좋은 노래가 갖추어야 할 멜로디와 리듬, 그 자체에 충실한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노래 그 자체로 좋은 순간들을 자주 보여주었다.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만으로 콜드플레이의 노래는 아름다웠다.
대형 체육시설이었음에도 음향 역시 훌륭했다. 사고가 없었을 뿐 아니라 드럼 리듬의 탄력이 2층 객석까지 통통거리며 날아왔다. 어쿠스틱 기타 줄의 떨림도 섬세하게 전해졌다. 관객들도 끊임없는 합창으로 호응했다. 공연 내내 ‘비바 라 비다’의 후렴구는 콜드플레이를 부르고, 요청하는 신호가 되었다. 크리스 마틴 또한 태극기를 들고, 긴 무대를 뛰고, 바닥의 태극기에 입을 맞추며 특별한 한국 관객에게 감사를 전했다. 스탠딩존 앞에 설치한 무대까지 나와 노래할 때는 관객과의 거리감도 사라졌다. 빛으로 감싸고 음악으로 젖어든 두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돌아오는 길, 떠오른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당신과 함께 꼭 다시 보고 싶다는 것.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