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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LP 마니아들 일냈다

등록 2017-06-01 18:12수정 2017-06-01 21:16

국내 유일 바이닐 공장 설립, 마장뮤직
조동진 최신작 ‘나무가 되어’ 등 발매
1일 기자간담회를 연 백희성 엔지니어(왼쪽부터), 하종욱 대표이사, 박종면 이사.
1일 기자간담회를 연 백희성 엔지니어(왼쪽부터), 하종욱 대표이사, 박종면 이사.
‘마니아’들이 결국 일을 냈다.

5월30일 뜨거운 햇볕이 쏟아진 날, 서울 성동구 성수동 ‘바이닐 팩토리’ 역시 열기가 가득했다. 기계 가운데에 검정 플라스틱 덩어리가 놓이자 금형이 내려와 넓게 펴면서 판을 따끈따끈하게 구워냈다. 1일 공식 개장한 공장의 프레싱 기계에는 ‘마장뮤직앤픽처스’ 마크가 선명하다. 칼럼니스트이자 음반 기획자로 활약하다가 지난해 이 회사에 합류한 하종욱 대표이사와 이엠아이(EMI) 등의 음반사에서 일해온 박종명 이사, 1세대 녹음 엔지니어한테 사사한 국내 아날로그 녹음의 1인자 백희성 엔지니어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메이드 인 코리아’ 기계다.

하종욱 대표이사는 집에 1만장의 바이닐을 갖고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 대표는 “바이닐 생산을 통해 음악의 본질을 복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바이닐 레코드는 추억이다. 대구에서 지낸 어린 시절 “새학기가 되면 중고시장에 나가 헌 참고서를 팔고 그 돈으로 엘피를 사곤 했다.” 레코드 가게에서 서너 시간씩 서서 뭘 살까 망설이다 보면 주인은 “애기 진상들”이라고 구박을 하기도 했다. 집에서 레코드 비닐을 벗기는 행위는 의식에 가까웠다. 해설서를 읽으며 기타와 베이스 연주자 이름을 익혔고 12인치 원형판을 전축 위에 올려놓고 소리가 울려나오기를 숨 참으며 기다렸다. 레코드에 새겨진 감상평은 그 시절의 일기이자 추억이다. 시디(CD)가 나오던 시절에도 진짜 듣고 싶은 음악은 고가의 바이닐을 구입했다. 그에게 바이닐은 음악 감상에서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마장싸운드’가 바이닐 공장을 준비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문으로 참여하면서 “돈 안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조언’했지만 결국은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다.

지난달 30일 마장뮤직앤픽처스 성수동 공장의 프레싱 기계. 오른쪽에는 유럽에서 수입한 기계도 보인다.
지난달 30일 마장뮤직앤픽처스 성수동 공장의 프레싱 기계. 오른쪽에는 유럽에서 수입한 기계도 보인다.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문을 닫으면서 국내의 바이닐 타이틀은 체코나 독일에 주문 생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011년 김포에 세워진 공장은 조용필의 <헬로> 바이닐 등을 찍었지만 불량률이 높았고 곧 짧은 이력을 마쳤다. 새 기계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시장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바이닐 시장은 새로운 성장산업이다. 2008년 500만장 규모였다가 2015년 3천만장 규모로 늘었다. 10여년 전부터 타워레코드 등에서는 바이닐 매장을 새롭게 열고 있다. 2016년 영국에서는 주간판매에서 바이닐이 디지털을 추월하기도 했다. 한국도 느리지만 ‘10억달러 규모의 향수 시장’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해 전년 대비 15~20% 판매가 늘어 28만장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닐 팩토리에서는 하루 1천장의 생산이 가능하고, 전 공정에 3~4주가량 걸린다. 수입 주문 생산에 3~6개월 걸리던 과정이 짧아진다. 생산량이 적어 생산비는 아직까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성수 <스테레오사운드> 편집주간 겸 오디오평론가는 마장에서 만든 엘피에 대해 “안정감”을 장점으로 꼽았다. “소재와 금형 방법 등 기술 노하우가 하나로 합쳐서 소리를 만들게 된다. 마장에서는 결함이 최소화되어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21세기 제조사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옛 소리의 부활이 아니다. 최고의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 대표는 까다로운 가수 조동진이 자신의 최신작 <나무가 되어>의 제작을 허락해주었다는 것을 긍지로 삼는다. <나무가 되어>는 공장 공식 개장일 일반에 공개되었다. 음반 프로듀서로 활약하는 조동익 역시 <어떤날> 1집과 2집을 제작할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소나타 앤 파르티타> 등도 발매할 계획이다. 지난해 바이닐 시장의 부활을 이끈 아이돌 음반 발매를 위해 대형기획사와도 논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하 대표는 “엘피로 들으면 좋을 음악 발매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음악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믿기 때문”이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업훈은 “음악을 새깁니다”이다. 6월17~18일 서울시 은평구 혁신파크에서 열리는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일반인 대상 청음 행사가 열린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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