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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심미주의를 버렸어요, 그것조차 지구적이니까”

등록 2017-06-12 18:30수정 2017-06-12 20:18

짙은, 9년 만의 정규앨범 ‘유니버스’

달, 중력, 우주라는 낱말에 담긴
삶과 사랑에 대한 은유
최대한 건조한 목소리로 불러

“일상의 이야긴 이제 좀 심심해요
우주에 빠졌죠
짙은 고독이 밀려왔어요”
서울 응암동 녹음실에서 만난 1인 밴드 ‘짙은’. 조소영 피디
서울 응암동 녹음실에서 만난 1인 밴드 ‘짙은’. 조소영 피디
감성 짙은 1인 모던록 밴드 ‘짙은’이 9년 만에 정규앨범 <유니-버스>를 발표했다. 이전 봄날의 곰 같던 노래(1집 <짙은>·2008년)는 해가 지지 않는 곳(미니앨범 <백야>·2011년)을 거쳐 사막을 헤매며 방랑했고(미니앨범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2014년) 이제는 아예 우주로 나아갔다. 2일 성용욱을 만난 서울 응암동 녹음실에는 ‘우주 탐사 시대의 우주론’이라 적힌 회의주의자 잡지(<스켑틱>)가 놓여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른다.” 설핏 웃는다. “우주에 관한 영화와 책을 많이 보았다. 볼수록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갔다. 노래는 그런 감성을 담고 있다.”

앨범에 실린 노래는 달(‘문’)과 중력파(‘그래비티 웨이브’)와 우주인(‘애스트러넛’)을 제목으로 달고 있지만 이는 삶의 팍팍함과 사랑에 대한 은유다. ‘문’에서는 “왜 난 혼자서만 공전해야 하죠?”라며 사랑의 일방성을 탓하면서도 “의미가 될까 겁이 나” 사랑이 발전하길 두려워하는 감정을 읊는다. ‘애스트러넛’은 “법칙과 중력과 시간도 없는 곳으로” 가버린 너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래비티 웨이브’는 “빛도 삼킬 만한” 중력 속으로 걸어가야 할 상황을 묘사한다.

필뮤직 뮤직카로마 제공
필뮤직 뮤직카로마 제공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성용욱은 ‘우주’의 습기 없는 공간에 걸맞게 목소리도 건조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떨림이 없게 노래를 불렀다. 인간적인 느낌 대신 기계적으로 갔다.” 그래서 “녹음 자체를 많이 안 했다. ‘심미주의’를 벗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조차도 지구적인 느낌이라서.” 하지만 감성이 필요한 순간에는 ‘물’의 도움도 받았다. “나는 취했어”로 시작하는 ‘펀치 드렁크 러브 송’를 노래할 때다. “흐느적거리는 상태의 사랑 노래 느낌이 안 나서, 마침 녹음실에 술이 있길래 들이켜고 노래했다. 어떤 느낌으로 불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번 앨범에는 2005년 밴드 결성 때 함께했다 탈퇴한 멤버 윤형로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소속사엔 앨범아트 등만 맡기고 자유롭게 작업을 했다. 앨범의 첫 곡인 ‘룰’은 “나는 알았다”로 시작한다. “흘러가는 시간 외엔 어떤 규칙도 깨달음도 없다는 걸.” 10여년 음악활동을 하면서 얻은 ‘우주의 법칙’에 대한 깨달음은 앨범 곳곳에 비친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태도다. <디아스포라> ‘망명’에서 던졌던 “너는 질문을 했고 나는 침묵했었다”는 “어디로 가닿을지 몰라” 하지만 “세상이 던져놓은 질문에 답하지 않을 거야”(‘펀치 드렁크 러브 송’)라는 ‘의지’로 변했다.

‘질문’은 현실을 살면서 머릿속에 자리한 잡념들이다. “그게 그거인 선형적인 질문들을 넘어선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음악이란 그가 ‘구도자’가 되는 도구다. “진정한 성장이란 게 있을까. 음악은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활동이더라. 음악을 통해 해답이 있는 공간을 찾아나섰다.”

‘짙은’의 정규앨범 <유니-버스>.
‘짙은’의 정규앨범 <유니-버스>.
그래서 초기에 노래했던 ‘설레임’과 ‘향기’ 그리고 아름다운 ‘남쪽 바다’로부터 멀어졌다. “저는 ‘일상생활’ 이야기는 심심한 것 같다. 아니 잘할 수 있는 만큼 보여준 것 같다. 더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한다.” 대중들에 대한 생각 역시 답하지 않겠다는 ‘질문’에 포함된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성공한 음악들에 도저히 못 맞추겠다. 과감하게 그 짐을 좀 내려놓자고 생각했다. 대중음악이라고 해서 어떤 대중의 기호를 잘 받들어가는 게 대중음악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도 한마디 덧붙였다. “잘 안 되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역시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서다.

그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었다. 대답을 듣겠다는 생각보다는 같이 느꼈으면 해서다. “노래 ‘56.15’의 1절에 ‘방’이 나온다. 어떤 영화의 ‘56.15초에 나오는 방이다.” ‘디 엔드’에서는 언어유희도 발견했으면 한다. ‘나는 알았다’로 시작한 앨범은 “알았다면, 그렇다면, 알았다면, 그랬다면”(‘디 엔드’)으로 끝난다. 앎은 여전히 유보 상태다. ‘유니버스’는 우주지만 ‘유니-버스’는 ‘하나 혹은 함께의 구절’라는 말이 된다. ‘짙은’은 결국 고독하면서 함께인 공간 지구로 귀환하고 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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