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화백이 에세이집을 펴냈다. 만화로 일상을 기록한 <만화일기>(가디언 펴냄)다. 책을 여는 첫 그림에는 “만화일기 작업이 성의가 없다고 욕허시는 분이 있으까봐 양해 말씀 드립니다. 책상에서, 전철에서, 택시에서 자리를 가리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그리니까 그림이 정성을 놓칠 때가 많지요”라고 특유의 ‘허영만체’로 써놓았다. “그림 흔들려요. 천천히 가세요!”라고 화백이 말하면 택시기사가 “지겹지도 않수? 차에서도 그림 그리게”라고 말한다. “만화가는 만화를 손에서 떼면 안 된다”는 다짐은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정신없이 그려댔다. 좋자고 하는 짓이었지만, 어느새 워크홀릭(일중독)이 되어 있었다”(작가의 말)로 이어진다.
허영만 화백은 <만화일기> 출간을 기념해 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일중독의 실체를 고백했다. 어디서나 그릴 수 있게 수첩과 펜을 외출 가방에 넣고 다닌다. 무지노트 한 권을 두달 반이면 다 쓴다. 그런 노트가 36권에 이른다. “고은 선생이 쓴 <바람의 사상>을 읽으며 만화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1년 6월부터 2013년 3월까지 1권에 담았고, 그 뒤부터 2013년 12월까지가 2권이다. 2016년 일기까지 9권이 예정돼 있다. “‘19금’이 많은데 그건 별개로 묶기로 했어요.” 처음엔 연필로 밑그림을 잡고 펜으로 정리하다가 나중엔 펜으로 바로 그렸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데 오늘은 (골프) 못 치네”라는 언어유희나, 맛집에 가서 치르는 유명세 등의 에피소드, 건축물 소묘 등이 종횡무진으로 실렸다. 일중독은 계속된다. 올해 초 한 일간지에 <커피 한잔 할까요?> 연재를 끝내면서 “마감 없이 살아야지 했는데 어느샌가 일을 꾸미고 있”더란다. 실제로 주식거래를 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그리는 ‘주식만화’ <3천만원>(가제)을 인터넷서점의 웹진을 통해서 내달 중 선보인다.
허 화백은 <각시탈>(1975년)로 데뷔 초부터 인기를 얻고 <오! 한강>, <타짜> 등을 통해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한국의 대표 만화가가 되었다. 이후 <비트>, <날아라 슈퍼보드> 등 청춘물·어린이물까지 영역을 넓혔고, <식객> 시리즈를 통해 ‘맛집 열풍’을 일찌감치 주도했다. 여전히 그는 손으로 그리는 것을 고집한다. “컴퓨터는 고통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실에서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로 몸을 푼다. 최근에는 개인 트레이닝도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죽는 게 꿈이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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