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령(68)씨가 지난 2000년 유명을 달리한 남편 허규의 예술 혼이 서린 북촌창우극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극장은 창덕궁 비원 옆 5층짜리 건물의 지하 1~2층에 자리잡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정동극장, 임대계약 해지 통보…새주인 찾지못해 발동동
연출가 허규(1934~2000)의 숨결이 깃든 북촌창우극장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허씨는 마당극과 창극, 축제의 개척자로 1981년부터 10년 동안 국립극장장을 지낸 뒤, 1992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이 극장을 세웠다. 허씨가 살아 있을 때 극장은 풍요로웠다. 그가 연출한 <돼지와 오토바이>를 비롯해 오태석, 이윤택 등 당대 최고 연출가들의 작품이 상연됐고, 전통음악과 풍물 상설 공연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뜬 뒤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극장 건물 5층에는 허씨의 미망인 박현령(68·시인)씨가 외롭게 살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2003년부터 이 극장을 임대 사용해온 정동극장이 지난해 말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비롯됐다. 박씨는 “정동 쪽이 허규 선생의 뜻을 살려 극장을 활성화해 줄 것이라 믿고 3천만원의 자비를 들여 수리까지 했다”며 “그런데 정동극장은 지난 3년간 1년에 한달 가량 연습실로 사용했을 뿐 사실상 방치해 왔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애초 연습실로 쓴다고 했으면 절대로 임대해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동극장 배용희 경영관리팀장은 “공간이 부족해서 연습실을 구하던 차에 허 선생이 돌아가신 뒤 극장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임대하게 됐다”며 “극장으로 활용해 보려고도 했지만 주택가인 데다 방음장치가 안 돼 있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극장 시설이나 주변 여건이 애초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는 주장이다. 작은 공연장이나 실험극장으로 활용해 보려고 대관 공고를 내기도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내부 감사에서 ‘방만한 예산운영’으로 담당 직원이 징계까지 당한 처지에 계약을 연장할 수는 없었다는 게 정동극장의 해명이다. 정현 민예극단 대표는 “종로구청이나 서울문화재단 등을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뜻있는 사람이 나서 북촌창우극장을 전통예술 전문공연장으로 만들었으면 한다”며 “허 선생의 작품 경향과도 맞고, 바로 옆에 비원이 있으니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2)764-6714.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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