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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대통령관저인 경무대에 왜 혈서가 쏟아졌나

등록 2021-11-22 09:59수정 2021-11-22 14:07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8) 우의마의

3연임 위한 사사오입 개헌 한뒤
거짓 불출마 의향 내비친 이승만
우마차까지 동원해 여론조작 나서
새로운 우의마의인 가짜뉴스 경계를

“독사의 족속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오 3,7-8)

“네 손이나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버려라. 두 손이나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불구자나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마태오 18,8-9)

세례를 받으러 온 바리새인과 사두가이들에게 “독사의 족속들아!”라며 꾸짖은 세례자 요한의 독설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인류 구원을 위한 봉사자가 되라고 누누이 강조하셨지만, 제자들은 핵심을 놓친 채 서로 첫째가 되겠다는 흑심을 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에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수덕 원리는 자신의 원욕을 이기는 절제와 극기인 동시에 이웃을 위한 배려와 양보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라면 비록 어려울지라도 철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네 손이나 발이 죄짓거든 그것을 잘라버리고, 네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버려라’는 더 무서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 말씀에 놀란 성서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죄를 짓고 살면서도 손발을 자르거나 눈을 뺀 사람들이 없으니 모두 위선자일 수밖에 없다고, 인간의 실존적 처지와 한계를 겸허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위선자이며 가식자입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자비와 용서를 청합니다. 미사 시작과 함께 “제 탓이오!”라고 세 번 가슴을 치며 하느님께 용서를 비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와 말까지 이승만 출마 원한다” 외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도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 익혔을 테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그의 행업을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선위 파동이란 말이 있습니다. 선위(禪位)란 임금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왕위를 물려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조선 태종은 재위 18년간 네 차례의 선위 파동을 통해 외척을 제거하고 후계자를 교체했습니다. 선조는 임진왜란의 와중에 선위를 선언해 세자인 광해군과 신하들을 몹시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영조 역시 재위 기간 중 여덟 차례나 선위의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들의 언행은 모두 ‘진심’이 아닌 ‘계략’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돌파하거나 자신의 약화한 존재감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술수였던 것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민주주의를 표방한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3선 대통령을 넘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를 딱 두 달 앞둔 1956년 3월 15일, 이승만은 돌연 불출마를 선언합니다. 자신이 이미 고령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3선이 드물고, 통일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도 무리하게 밀어붙인 개헌에 비해 포기의 변은 참으로 시답잖았습니다.

잠시 훌륭한 결단이라는 평가도 나왔으나, 바로 다음 날부터 상황은 급반전합니다. 전국에서 온갖 단체들이 불출마를 철회하라고 시위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요즘 말로 이승만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겁니다.

노동자 단체, 농민 단체, 각종 직능단체들이 앞다퉈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시위가 있었으니 우마차 조합의 가두행진입니다. 그들은 우마차 800여 대를 끌고 나와 ‘소와 말까지도 이승만의 출마를 원한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우의마의(牛意馬意)라는 신조어의 유래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지나간 거리마다 소똥 말똥으로 범벅되고 악취에 시민들이 코를 감싸 쥐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서울 시내에 우마차 출입은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능한 친일 경찰의 후예들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위 사태를 지켜보던 이승만은 동포들이 이리 고생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며 민의는 자필 서한으로 전달해도 된다고 점잖게 거들었습니다. 이후 경무대에 혈서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연판장은 3백만장, 출마 권유 전보는 7,000통이 넘었고 합니다. 이승만이 국민의 도도한 민의를 거스를 수 없다며 불출마 철회를 발표하면서, 비로소 추악한 정치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사사오입 개헌은 성공한 듯 보였지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개헌에 반대했던 소장파 의원들은 자유당을 탈퇴했고, 국민은 초라한 논리로 개헌을 밀어붙인 이승만 정권을 비웃었습니다. 이승만으로서는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할 근거가 필요했고, 그 근거가 바로 민의(民意)였습니다. 당시 출마 호소 시위는 민의를 넘어 우의(牛意), 마의(馬意), 심지어 귀의(鬼意)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연판장에 죽은 사람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귀신도 이승만의 출마를 바란다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리 관변단체 시위 계획 세워

이승만은 영악(獰惡)했습니다. 한 번 밀었으면 한 번 당겨야 한다는 싸움의 법칙을 알았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제거하는 냉혹함과 불출마 선언을 하기 몇 달 전부터 관변단체를 통해 시위를 계획하는 치밀함을 가졌습니다. 그의 시도는 늘 성공하는 듯했지만, 그 어떤 계략과 방편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승만 정권은 4·19 혁명과 함께 몰락했습니다.

그 후,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의마의 소동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얼굴을 하고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민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왜곡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독재자도 자신을 위해 독재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재자일수록 민의를 강조합니다. 더군다나 최근의 변화된 미디어 지형은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어쩌면 진실과 거짓, 빛과 어둠을 가려내기가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거짓을 덮고, 빛이 어둠을 가리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한 윤민석 작곡가의 민중가요가 바로 이를 장엄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침묵하지 않는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소(牛)의 뜻과 말(馬)의 뜻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늘 경계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유형의 ‘우의마의’인 온갖 가짜 뉴스를 잘 식별하고 타파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과 국가 공동체가 늘 진실과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참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저희 겨레 모두 양심에 따라 늘 바른 삶을 살도록 보살펴 주소서. 특히 정치인들이 정직하게 살도록 재촉해 주소서. 무엇보다도 언론인들이 사명을 다 해 진실을 정확하게 전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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