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로페의 고향 티로스는 유럽의 기원이 동방임을 암시
튀니지엔 수도교·해안 목욕탕·콜로세움 등 로마유적 즐비
튀니지엔 수도교·해안 목욕탕·콜로세움 등 로마유적 즐비
[책&생각] 신화와 축제의 땅, 김헌의 그리스 기행 (19) 튀니지에서 본 카르타고
이집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튀니지로 갔다. 가는 내내 두 사람이 떠올랐다. 트로이아의 영웅 아이네아스(아이네이아스)와 페니키아 티로스(티루스. 현 레바논의 티레)의 공주 디도였다. 티로스는 섬이었는데, 그곳을 육지와 연결시킨 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 기원전 332년, 이집트로 남진하던 그는 티로스와 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육지와 티로스를 잇는 제방을 쌓았다.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꿈을 꿨는데, 반인반수의 사티로스를 사로잡은 것이다. 예언가는 기뻐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사티로스’를 잡은 것은 ‘티로스’를 정복할 승리의 전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제방을 타고 티로스를 공략하여 꿈이 진실임을 몸소 입증했다.
티로스는 유럽의 기원처럼 여겨진다. 먼 옛날 그곳을 다스리던 아게노르 왕에겐 에우로페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멋진 황소로 변해 그녀를 태우고 바다를 건너 크레타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에우로페는 미노스를 낳았고, 미노스는 에게해를 지배하는 왕이 되었다. 크레타를 포함해서 그리스 전역, 나아가 서쪽 대륙 전체가 그녀의 이름 ‘에우로페’(Europe)를 따라 ‘유럽’이 되었다. 이는 유럽 문명의 기원이 동방에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리스의 문명을 꽃피운 알파벳도 동방의 페니키아에 기원을 둔다.
에우로페의 고향 티로스는 페니키아의 중심지였다. 디도는 그곳의 왕 벨로스(벨루스)의 딸이었는데, 시카이오스라는 부자와 결혼했다. 그의 재산을 노리던 오빠는 매제를 죽였다. 비명횡사한 시카이오스는 아내인 디도의 꿈에 나타나 모든 사실을 알리면서 ‘오빠가 당신도 노리고 있소. 내 재산과 함께 멀리 달아나시오’라고 재촉했다. 꿈에서 깨어난 디도는 배를 타고 서쪽으로 달렸다. 그녀가 도착한 곳이 바로 카르타고, 지금의 튀니지 땅이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의 슬픔과 절망, 두려움, 분노를 내내 상상하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카르타고에 도착한 디도는 비르사(Byrsa) 언덕에 왕궁과 요새를 세우며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역사적으로 카르타고는 가히 해양제국이라 할 만한 페니키아의 식민도시였다. 고대 세계의 지중해는 양분되어 있었다. 동쪽을 그리스가 지배했고, 서쪽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한 페니키아인들의 영역이었다. 동방에서 시작된 페니키아 문명은 그 절정을 카르타고에서 이룬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와 카르타고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기다란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반도의 앞코에 있는 시칠리아섬이 그리스와 카르타고가 ‘맞짱’을 떴던 격전지다. 그 섬도 결국 동쪽은 시라쿠사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가, 서쪽은 카르타고가 차지하며 양분되었다.
그리스와 카르타고가 지중해를 나눠 지배하고 있는 동안, 로마는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디도 신화가 보여주듯, 페니키아가 지중해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 카르타고를 세웠을 때부터 61년이 지난 기원전 753년에서야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웠다. 그때 로마는 나라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장화’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나와 그리스와 카르타고를 제압하고 마침내 지중해 전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로 만들었다. 원래 이 말은 로마가 바다로 진출하여 카르타고를 이기고 사르디스와 코르시카, 시칠리아섬을 정복한 후, 이 세 섬과 이탈리아반도로 둘러싸인 티레니아 바다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그러나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가 이집트를 근거지로 한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을 무너뜨리자, 지중해 전체가 로마의 ‘우리의 바다’가 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고 최초의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였다. 공화정파의 서슬이 퍼런 상황에서 카이사르조차 그들의 칼날에 쓰러졌으니, 아우구스투스가 권력을 잡고도 대놓고 황제라고 나설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불렀다. 로마가 천하를 지배할 제국이 되고, 자신이 황제에 오르는 것이 유피테르(=제우스)의 뜻임을 만천하에 천명할 웅장한 영웅서사시를 위해서였다. 베르길리우스가 선택한 주인공은 트로이아의 영웅 아이네아스였다.
10년 동안 지속되던 트로이아 전쟁은 그리스의 지장(智將) 오디세우스가 짜낸 트로이아 목마 작전으로 끝났다. 그리스의 전사들이 숨어 있던 거대한 목마를 트로이아인들이 전리품이라 착각하고 도성으로 끌어들인 것이 패인이었다. 대부분의 트로이아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도륙당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사람들은 새로운 트로이아를 찾아 나섰다. 그 선봉에 선 이가 아이네아스였다. 여러 해 바다를 떠돌던 아이네아스 일행은 거센 폭풍으로 시달리다가 카르타고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던 디도를 만났다. 디도는 아이네아스 일행을 궁전에 초대해 잔치를 벌였고, 그로부터 트로이아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디도는 아이네아스에게 매료되었고, 둘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 일행이 비르사 언덕에 도착하여 도성의 잔해를 바라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서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만남과 사랑의 서사가 펼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덕에서부터 경사를 타고 넓게 펼쳐지는 평원과 그 끝자락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지중해가 내려다보이자, 그 해안선에 배를 댄 아이네아스 일행이 지친 몸을 이끌고 언덕으로 올라오는 장면이 그려진다. (물론 지금의 잔해는 나중에 로마인들이 건설한 건물에 남은 것이지만) ‘내가 서 있는 이곳 어디쯤에서 둘은 만나고 사랑했겠지.’ 그러나 일 년 동안 카르타고에 머물던 아이네아스는 디도를 떠나야만 했다. 유피테르가 그에게 이탈리아로 가서 새로운 트로이아를 건설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아이네아스가 세울 제2의 트로이아는 먼 훗날 로마가 될 운명이었다. 그가 떠나는 것을 견딜 수 없던 디도는 그를 원망하고 증오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카르타고와 로마는 앙숙이 될 판이었고, 마침내 그녀의 원한은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BC 264년~BC 146년)으로 터져버렸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를 위협했던 것도 디도의 원한에서 비롯된 셈이다.
베르길리우스가 그려낸 아이네아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조상이며 전조였고 현신이었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황제가 되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일은 먼 옛날 천상의 유피테르가 지상의 아이네아스에게 내렸던 지엄한 명령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시인의 상상력은 역사의 시간을 엉클어놓았다. 기원전 12세기께, 트로이아를 탈출한 아이네아스를 영접한 디도가 카르타고를 세운 것은 기원전 814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은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과감한 상상력 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 허구적 서사는 역사적 진실을 압도하며 로마인들을 사로잡았다.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는 16대를 거슬러 올라가 아이네아스의 혈통에 잇닿게 되었고, 로마의 역사는 그리스와 맞서 물러섬이 없던 강국 트로이아를 뿌리로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트로이아는 애초에 이탈리아 혈통의 후손이 세운 도시라고 한다.
바르도 국립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나는 베르길리우스를 만났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베르길리우스의 모자이크가 여기에 있다니! 역사의 무사(Mousa·음악과 시를 관장하는 여신) 클리오와 비극의 무사 멜포메네의 가운데 앉아 있는 베르길리우스의 손에는 두루마리가 들려 있고, 거기엔 로마 건국서사시 ‘아이네이스’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무사여, 내게 그 이유를 말해다오, 신성이 어떤 상처를 입었기에(Musa, mihi causas memora, quo numine laeso quidve)….” 밀려오는 감동에 넋을 잃고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는 완전히 로마의 도시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의 튀니지는 수많은 이슬람 유적들 사이로 그에 못지않게 많은 로마의 유적들을 품고 있다. 물을 중시하던 로마인들이 만든 거대한 수조(La Malga), 도시에 물을 공급하던 수도교(Aquaeductus),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거대한 해안 목욕탕, 그리고 무엇보다도 엘젬에 있는 콜로세움이 튀니지를 또 하나의 로마로 만들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카르타고에서 절정 이룬 페니키아 문명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만남과 사랑
로마 건국신화 만든 베르길리우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비르사 언덕의 카르타고 옛 도성 유적. 김헌 제공
튀니지 엘젬에 로마인들이 세운 콜로세움. 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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