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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잊혀져가는 내밀한 풍광

등록 2006-03-29 22:26

[산따라 사람따라] 설악산 용대리-백담사
산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설악산은 ‘산중미인’으로 통한다. 지리산이 그 깊고도 넓은 품으로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산’이라면 설악산은 ‘산꾼’들을 매료시키는 강렬하고도 현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산이다. 산에 갓 입문한 젊은 산악인들은 한 철이라도 설악에 다녀오지 않으면 ‘상사병’이 날 정도로 설악산은 이 땅의 ‘산꾼’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던 설악산에는 한때 해골이 즐비했는데, 전후 이곳을 대담하게도 고교생의 신분으로 찾은 이가 있었다. 바로 서울고교 2년생이었던 진교준 시인이다. 그리고 그 체험을 ‘경희백일장’에서 ‘설악산 얘기’라는 시로 써냈고, 당시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조병화 시인의 눈에 들어 ‘장원’으로 뽑혔다. “나는야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로 시작되는 진교준 시인의 ‘설악산 얘기’는 오늘날까지 40-50대 산꾼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술자리에서 노래 대신으로 ‘낭송’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용대리에서 백담사 거쳐 대청봉에 이르는 길은 어느 계절에 가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며 항거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였을까, ‘설악산 시인’으로 불렸던 이성선씨는 살아 생전 이곳 백담사에서 문을 연 만해시인학교의 초대 교장을 맡았으며, ‘시민선방’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맑고 푸른 동해를 굽어보는 설악산, 하늘에 뜬 달과 구름, 바위와 소나무를 스쳐가는 바람 그 자체가 이성선 시인에게는 온 우주이자, 바로 시였다. 60살을 일기로 지난 2001년에 작고한 이성선 시인은 그의 시세계처럼 연초록 나뭇잎 끝자락에 잠시 머무는 투명한 햇살이거나 또는 절벽 위 소나무를 세차게 뒤흔들며 백두대간 넘나드는 바람으로 남아 영원히 설악산을 사랑하리라.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8킬로미터, 20리길은 그 규모와 계곡 풍광이 아름답기로는 내설악에서 으뜸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불과 10여 분만에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정말 소중한 것을 놓쳐버리는 셈이다. 대략 두 시간여에 걸쳐서 쉬엄쉬엄 좋은 이들과 함께 걷다보면 열목어 잡아먹으며 살던 설악산 반달가슴곰 얘기며, 그 반달곰 잡던 황 포수와 도망간 아내 얘기, 사법고시 준비하다 입산해서 널협이골이며, 길골을 생활터전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이 처사 얘기 등 설악산의 내밀한 사연들이 정겨운 길동무로 다가온다.

횡계와 더불어 겨울철이면 황태덕장으로도 유명한 용대리에는 우리나라 해외원정등반사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산악인이 한 분 살고 있다. 바로 1962년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등반(다울라기리 2봉)의 문을 연 박철암 교수(티벳탐험협회 회장)다. 팔순을 넘긴 고령임에도 용담농원을 가꾸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며, 악수할 때 손아귀 힘은 상대의 손이 아플 정도로 세다. 그는 올 3월에도 어김없이 티벳으로 출국했으며, 현역 탐험가로서 ‘지도상의 공백지대’를 탐구하며 총 20만킬로미터 이상의 탐험 역정을 남기고 있는 중이다.

김우선/시인· <사람과 산>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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