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30대 도시여성들
차려입고 분위기 있는 곳서 수다 혹은 대화를 나누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처럼 ‘늦은 아침’ 문화를 즐긴다
주5일제·‘휴’바람의 새 풍경이다
차려입고 분위기 있는 곳서 수다 혹은 대화를 나누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처럼 ‘늦은 아침’ 문화를 즐긴다
주5일제·‘휴’바람의 새 풍경이다
용산 이태원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브런치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인 <르 쌩텍스>. 토요일이었던 지난 8일 낮 1시 브런치 피크 타임 시간대, 16개 테이블 가운데 14개 테이블의 손님이 친구들끼리 짝을 이뤄 나온 20∼30대 여성들이었다. 여성전용도 아닌 레스토랑에서 주말마다 나타나는 이 기현상은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브런치 열풍을 보여주는 한 예다. 안상준 사장은 “5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땐 100%가 외국인 손님이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젊은 한국인 여성 고객이 평균 90%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르 쌩텍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브런치 전문점에서 주말 브런치 시간대 고객 가운데 90% 정도는 20∼30대 여성들이다.
20∼30대 여성들의 ‘문화체험’= 이런 브런치 열풍은, ‘식생활’이라기 보다는 ‘문화체험’의 성격이 강하다. 식생활로서의 브런치는, 브런치 전문점에서 먹는 브런치 메뉴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 식사라면 혹은 아침을 거른 점심 식사라면,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 가서 누구와 뭘 먹든 브런치다. 하지만 최근 서울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20∼30대 여성 대부분은 이태원이나 강남일대(청담동·압구정동) 브런치 전문점과 브런치 메뉴가 있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가서 브런치를 먹는다.
일요일 오전 강남 도산사거리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 <스토브>를 찾은 박진희(20)씨는 브런치를 먹기 위해 성동구 왕십리 집에서 이곳까지 큰 걸음을 했다. 박씨는 “브런치 전문점에서 브런치 메뉴를 먹어야 느낌도 색다르고, 브런치를 먹은 것 같다”며 굳이 먼 곳까지 찾아 온 이유를 설명했다. 주말에만 브런치 메뉴를 선보였던 이 곳의 경우, 브런치 열풍에 힘입어 일주일 전부터 평일에도 쁘띠 브런치 메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대 일반 메뉴만 판매했을 때보다 갑자기 매출액이 40% 가량 높아졌다. 늦은 아침과 이른 오후 밥을 먹고 싶다는 생리적 욕구보다 브런치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문화적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같은 식당을 찾는 손님들 가운데서도 브런치를 주말 식생활의 일부로 즐기는 외국인과 문화체험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의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르 쌩텍스> 안 사장은 “외국인들의 경우 남·녀 비율이 크게 차이나지 않을 뿐더러, 반바지에 슬리퍼 처럼 편안한 차림으로 와서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풀 코스 식사를 즐기고, 와인까지 마시면서 두 시간이 넘게 브런치를 즐긴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인들은 멋스럽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들끼리 식당을 찾아 주로 ‘브런치 플래터’ 세트 메뉴를 먹고, 한국인들의 평균 식사시간 보다는 길지만 한 시간 반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진원지는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 여성= 미국 전문직 뉴요커 여성들의 성생활과 도시생활을 그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는 최근 서울의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브런치 열풍’의 진원지로 꼽힌다. 이 드라마에서 각각 칼럼니스트, 홍보전문가, 변호사, 큐레이터인 단짝 친구 4명은 주말마다 뉴욕 도심 한 가운데 레스토랑에 모여 브런치를 먹는다. 식사모임이긴 하지만 그들의 브런치에서는 끼니해결보다 대화에 초점이 맞춰진다. 성생활에 대한 질펀한 수다나 연애와 결혼,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화제에 오른다. ‘뉴요커’가 주는 후광효과에 덧붙여 전문직이면서 트렌드 세터로 설정된 이 여성들의 브런치 풍경이, 한국 여성들에게는 따라해보고 싶은 ‘문화’로 인식됐을 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브런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는 <섹스 앤 더 시티>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때와 시기적으로 맞물린다. 이 드라마는 지난 2002년 온미디어의 유료 채널인 <캐치온>에서 방송을 시작했지만, 2004년과 2005년 무료 채널인 <오씨엔>과 <온 스타일>에서 방영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1∼2년 전부터 <섹스 앤 더 시티>가 여성 시청자들의 생활 속으로 깊히 파고들었고, 배양기를 거쳐 지난해 하반기부터 브런치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덧붙여 이 드라마는 전체 시청자 가운데 48.5%가 20∼34살 여성일 정도로, 브런치 열풍의 핵심에 있는 20∼3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친구들과 함께 자주 브런치 식당을 찾는다는 김수연(27·강남구 역삼동)씨는 “브런치를 먹는 데는 <섹스 앤 더 시티>같은 데서 본 뉴요커들의 삶을 모방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고, 실제로 주변에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주5일 근무제와 휴 트렌드= <섹스 앤 더 시티>가 브런치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널리 퍼뜨리긴 했지만, 실제로 브런치를 실행에 옮기게 한 건 ‘주5일 근무제’의 본격적인 도입과 ‘휴 트렌드’다. 주5일 근무제로 한결 여유로워진 주말, 친구·가족·연인과 한가롭게 맛과 분위기를 살린 브런치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휴 트렌드에 딱 들어맞는다. <싱글 마케팅>(비즈니스북스 출판)의 저자인 이연수 엘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중시하는 휴 트렌드가 새로운 웰빙 코드로 자리잡고 있고,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주말을 이용해 휴식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는 싱글족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런치족 가운데 유독 20∼30대 여성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2000년대 들어서 싱글족은 소비 트렌드의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가 됐고, 이 가운데 특히 젊은 여성들이 웰빙 트렌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또 장기적으로 브런치 문화의 남녀노소를 불문한 대중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이태원 <수지스>의 강경화 매니저는 “아직 비중이 낮긴 하지만 데이트를 나온 연인 고객은 물론, 유모차를 끌고 오는 가족 단위 고객들도 늘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지난9일 서울 강남의 브런치 전문점인 ‘텔 미 어바웃 잇’에서 한 여성 손님이 브런치를 서빙받고 있다
주5일 근무제와 휴 트렌드= <섹스 앤 더 시티>가 브런치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널리 퍼뜨리긴 했지만, 실제로 브런치를 실행에 옮기게 한 건 ‘주5일 근무제’의 본격적인 도입과 ‘휴 트렌드’다. 주5일 근무제로 한결 여유로워진 주말, 친구·가족·연인과 한가롭게 맛과 분위기를 살린 브런치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휴 트렌드에 딱 들어맞는다. <싱글 마케팅>(비즈니스북스 출판)의 저자인 이연수 엘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중시하는 휴 트렌드가 새로운 웰빙 코드로 자리잡고 있고,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주말을 이용해 휴식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는 싱글족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런치족 가운데 유독 20∼30대 여성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2000년대 들어서 싱글족은 소비 트렌드의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가 됐고, 이 가운데 특히 젊은 여성들이 웰빙 트렌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또 장기적으로 브런치 문화의 남녀노소를 불문한 대중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이태원 <수지스>의 강경화 매니저는 “아직 비중이 낮긴 하지만 데이트를 나온 연인 고객은 물론, 유모차를 끌고 오는 가족 단위 고객들도 늘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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