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재 위 신선봉에서 바라본 청옥산 자락 학등의 단풍. 무릉계곡을 감싸고 있는 두타산과 청옥산에는 계절의 순환에 점점 밀려나고 있는 늦가을의 마지막 기운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강원도 동해 무릉계곡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늦가을을 밀어내고 초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요즘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 자락에 걸쳐 있는 무릉계곡에는 늦가을을 보내기가 아쉬운 이들의 발걸음이 잦다.
두타산과 청옥산의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리고 맑은 계류가 화강암 돌덩이를 오랜 세월 갈고닦아 넓고 반듯한 무릉반석을 이뤄냈다.
두타산·청옥산 깊은 골짝 옥류에
울긋불긋 가을빛 부서져내리고
깎아지른 벼랑밑 비경 감탄 절로
용추폭포·쌍폭 앞에 두니 장쾌함이 ‘석장암’이라 불리기도 하는 1500여평의 화강암 바위 위에 올라서자 이곳저곳에 멋들어진 명문들이 새겨져 있다.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이라는 구절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신선들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해 많은 시인묵객들의 시들도 눈에 띈다. 무릉반석을 지나 아치형 돌다리를 건너자 천년 고찰 삼화사가 반긴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0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이 절은 삼공암, 측연대, 중대사로 불리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뒤 민심을 달래고자 삼화사로 이름을 바꿨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삼화사에서 등산로는 학소대로 가는 왼쪽 길과 관음암으로 가는 오른쪽의 두 갈래로 나뉘는데 관음암 길이 덜 알려져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간혹 철계단에 의존해야 하는 구간도 있지만 길이 그리 험하지 않은데다 발아래로 나직이 계곡을 감아돌기 때문에 신선바위 코끼리바위 등에 올라서서 추색이 완연한 무릉계곡의 숨겨진 멋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지만 관음암을 지나 하늘문에 이르는 길이 힘든 편인데 깎아지른 듯한 벼랑 아래로 펼쳐진 바위문 입구에 서자 저절로 머리가 주뼛 서고 오금이 땅긴다. 철제 난간을 붙들고 90도 가깝게 비탈진 300여 층계를 기다시피 내려서니 피마름골이 나온다. 피나무가 많아서 피마름골이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죽은 이의 피가 많이 흘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지는데 하늘문을 지나면서 피가 마른 이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만하다.
문간재 들머리에 서자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문간재를 넘어 신선봉에 올라 가을빛이 물씬한 무릉계곡 아래를 살펴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무릉계곡의 최대 절경인 용추폭포와 쌍폭을 보고 삼화사 쪽으로 내려오는 길도 맑은 계곡을 끼고 있어 아기자기하고 낭만적이다. 특히 미끈한 바위틈을 따라 물줄기가 4단 폭포를 이뤄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가 음률의 고저장단을 맞춘 듯이 들리는 학소대는 학이 둥지를 틀고 살 만한 곳이겠다. 동해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으로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전국 최고의 해돋이 명소 추암 촛대바위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추암 제1경’이라 일컬어지는 촛대바위는 동틀 무렵 주변의 각종 기암괴석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바위가 붉은 해와 어우러져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침 6시30분쯤 추암마을을 찾아가자 촛대바위와 아래 형제봉 부근에 일출의 장관을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사진작가들로 가득했다. 쪽빛 동해를 오른쪽으로 끼고 삼척 방향으로 7번 국도를 타고 가면 바닷가 곳곳에 때묻지 않은 자그마한 어촌마을이 숨어 있다. 그 가운데 동해시 회타운인 어달동과 망상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대진마을에 들어서자 서울 경복궁 근정전의 정동방을 알리는 표지석이 반긴다. 방파제에서는 낚시꾼들이 붉은 일몰의 바다를 마주보고 가을볕에 살이 오른 물고기를 잡아 올리느라 해 저무는 줄을 모르고 있다. 동해/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서울 경복궁 근정전으로부터 정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는 대진마을의 한가로운 저녁 풍경. 쪽빛 동해 바닷가 곳곳에는 때묻지 않은 자그마한 어촌마을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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