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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스리랑카 ‘시기리야 록’

등록 2005-04-21 16:28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스리랑카 시기리야 록 정상의 성벽.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스리랑카 시기리야 록 정상의 성벽.


피로 얼룩진 ‘바위 요새’ 천년 바람에 스러지고…

차와 보석으로 알려진 스리랑카. 인도 동남쪽 끝에 물방울처럼 매달린 섬나라다. 농업·관광이 주요 자원이지만, 지난해 말 지진해일로 주민 등 3만여명이 희생되면서 관광객이 급격히 줄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최근 긴급 지진해일 예고시스템 마련과, 질병 예방을 위한 수질점검 강화 등 대비책 마련에 힘써, 3월 들어 관광객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지원으로 동남해안 피해지역 관광지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4월12일 만난 우다야 나나야카라 스리랑카 관광청장은 “한국정부와 민간단체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며 “해안 관광지의 새 단장과 함께 앞으로는 전혀 다른 스리랑카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전혀 다른 면모’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2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내륙의 문화유적들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말한다.

해안 휴양지보다 빼어난 스리랑카의 보석은 사실 풍부한 문화유적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일곱 개나 된다. 문화유적지들은 주로 더위가 덜한 중부 산간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비좁은 도로 사정으로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소 길지만, 찬란한 유적들과 아름다운 경치는 그 피로를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내륙 한가운데 자리잡은 시기리야 바위산 도시 유적도 그런 곳 중 하나다.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5세기에 건설된 요새도시다.

카샤파 왕위에 눈멀어 아버지를 죽이고
해발 370m 정상에 거대한 성채 세웠으나
동생 군대에 패하고 자결

정원·연회장터·거울회랑…
당시 위용 더듬어 볼 수 있어
사자 계단도 발만 남아
스리랑카 세계유산 7개중 하나

%%990002%%해발 370m 바위산 정상의 폐허. 지나가던 바람이 서늘한 손길 내밀어 길손을 맞는다. 높이 70m 수직 절벽으로 둘러싸인 바위 꼭대기에서 바람이 보여주는 건, 무너져내린 성벽과 기단만 남은 건물터, 계단 따위들이다. 1500년 전 여기서, 천륜을 거스른 한 왕이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11년 동안을 살았다. 광활한 평원이 좌우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내려다보였으나, 그 곳은 이미 왕이 도망쳐온, 돌아갈 수 없는 땅이었다. 스리랑카의 일곱 개 세계유산 중 하나인 시기리야 바위산 요새도시 유적(시기리야 록)이다.

스리랑카 제1도시 콜롬보에서 동북쪽으로 170㎞. 자동차로 5~6시간 달리면 시기리야 바위산에 닿는다. ‘에이급 하이웨이’라지만 비좁은 왕복 2차선 낡은 도로다.

웅장하게 버티고 선 거대한 암벽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바위산 밑 네모진 성곽을 해자가 두르고 있고, 해자 밖으론 다시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이 둘려 싸고 있다. 해자를 건너 성 안으로 들면 바위산 들머리에 이르는 중앙로가 곧게 펼쳐지고 좌우론 물을 가뒀던 수조들과 수많은 건물터가 나타난다. 길을 따라 복개된 수로가 이어지는데, 비가 내려 물이 늘면 곳곳에 뚫린 수로 구멍으로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쳐나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바위산 밑으로 다가서면 누구나 수직 절벽 바위산에 압도당하게 된다. 하필이면 저 까마득한 바위 꼭대기에 왕궁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이 바위산엔 광기와 피로 얼룩진 왕조사가 서려 있다.

5세기 때 왕자이던 카샤파는 왕족 혈통을 가진 이복동생 목갈라나에게 왕위를 빼앗길까 우려해, 아버지 다투세나 왕을 가두고 왕위를 차지한다. 분노한 동생이 인도로 망명한 뒤 권력욕에 눈이 먼 카샤파는 부하를 시켜 아버지를 살해한다. 카샤파는 이후 7년 동안 시기리야 바위산에 왕궁을 건설하고 스스로 갇혀 살게 된다. 동생의 보복이 두려웠을까, 뒤늦은 참회의 심정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결국 11년 뒤 복수를 위해 돌아온 목갈라나 군대와의 전투에서, 카샤파는 자신의 병사들이 후퇴하고 혼자 남게 되자 자결을 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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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바위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꼭대기까지 1200개에 이른다는 대리석 계단이다. 양옆으로, 승려들이 설법하던 바위굴과 빛바랜 인물그림이 희미하게 남은 벽화들을 볼 수 있다. 본디 이 바위산은 고대 불교 승려들의 수도장이었다. 바위틈을 지나 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좁고 긴 통로인 이른바 ‘거울 회랑’(미러 월)이 시작된다. 절벽을 마주하고 높이 3m의 황토 빛 벽이 이어진다. 옛날엔 이 벽면이 거울 구실을 해 멀리서도 회랑을 오가는 이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벽돌에 칠을 먹이고 그 위에 달걀 흰자와 꿀·석회 따위를 바른 뒤 표면을 문질러, 사물이 비치도록 했다. 벽면엔 옛 싱할라 문자로 쓰인 시들이 무수히 적혀 있다.

시기리야 유적 감상의 압권은 거울 회랑에서 나선형 계단을 타고 수직으로 올라 만나는 미인도 벽화다. 젖가슴을 내놓은 여성을 중심으로 주위에서 화려한 장식과 옷을 갖춰입은 시녀들이 시중을 드는 모습인데, 거의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또렷한 선과 선명한 색채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주인공은 천국의 요정 압살라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본디 시기리야 바위산 둘레엔 500명의 미인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지만, 지금은 18명의 벽화만 남아 있다. 카샤파왕이 11년 동안 이 바위산에서 지내는 동안, 참회의 심정으로 아버지를 위해 제작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990004%%



좀더 오르면 바위산 밑 계단을 사이에 두고 사자의 거대한 두 발이 버티고 있는 광장에 이른다. 지금은 사자의 발만 남아 있으나 본디 계단은 사자의 입을 통해 오르도록 돼 있었다. 사자의 머리와 갈기를 표현하기 위해 촘촘히 벽돌을 박았던 흔적이 절벽에 남아 있다. 시기리야라는 이름도 싱하(사자)기리야(목구멍)에서 유래했다.

1.6ha 넓이의 바위산 꼭대기엔 웅장했을 옛 위용을 더듬어볼 수 있는 왕궁 건물터와 저수지·정원·연회장터 등과 이들을 잇는 비좁은 계단길, 카샤파왕이 앉아 무희들의 춤을 감상했다는 대리석 의자 따위가 남아 천년을 불어온 바람에 쓸리고 있다.

시기리야(스리랑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스리랑카 여행정보=열대지역에 속한, 남한의 3분의2 정도 크기의 섬나라다.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48년 독립했다. 1972년 국호를 실론에서 스리랑카로 바꿨다. 인구는 1900만명. 싱할라족(74%)과 타밀족(18%) 등이 원주민인데, 1983년 촉발된 두 종족 간 내전이 최근까지 이어져오다, 2003년 휴전협정을 맺었다. 타밀반군이 있는 지역은 섬의 동북부 지역으로 지금도 관광이 제한된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 늦다. 직항편이 없어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여행객에 한 달 간 비자가 면제된다. 화폐는 루피. 1달러가 100루피, 100루피는 1000원 가량. 달러로 바꿔 가져간 뒤 현지 은행에서 루피로 바꾼다. 싱할라어와 타밀어가 국어이며,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5월부터 9월까지 남서해안지역과 중부지역은 우기다. 택시(기본 30~50루피)와 3륜 오토바이인 툭툭(기본 50루피)은 타기 전에 흥정을 하는 게 좋다. 버스는 국영과 민영이 있는데, 민영버스엔 에어컨이 달려 있다. 특산물로는 홍차와 블루 사파이어 등 보석, 공예품, 식물성 향신료 등이 있다. 지진해일 피해를 많이 본 동남해안 지역의 호텔 등은 복구됐으나, 주택 등 주민들의 생활기반시설은 한창 복구 중이다.

여행상품=국내항공 직항편이 없어 스리랑카 여행상품은 많지 않다. 가야여행사는 최근 싱가포르를 거쳐 스리랑카의 콜롬보 시내, 시기리야록, 불치사, 담불라사원, 콜롬보 해변 등을 둘러보는 4박5일짜리 상품을 내놨다. 매일 출발. 정글 속 호숫가의 자연친화적 호텔과 해변 리조트 숙박이 포함돼 있다. 1인 129만원(2인 1실). 4인 이상 출발. (02)536-4200.


스리랑카 불거리들

스리랑카엔 여섯 개의 세계문화유산과 한 개의 세계자연유산(싱하라자 정글) 등 모두 일곱 개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때의 항구도시인 갈레를 제외한 5곳의 문화유산이 이른바 스리랑카 문화유적 삼각지대에 집중돼 있다. 인도의 침공 등으로 옮겨다닌 옛 수도 아누라다푸라, 폴로나루와, 캔디를 잇는 삼각지대다. 주요 세계문화유산과 전통시장 등 볼거리들을 소개한다.

15m 길이 황금색 와불

담불라 사원=거대한 바위 밑 굴에 150여 개의 부처상을 들인,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이다. 옛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와 캔디를 잇는 도로변 마을인 담불라에 있다. 다섯 개의 굴에서 2200년 전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제작된 벽화와 불상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첫번째 굴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자연석으로 조각된 15m 길이의 황금색 와불이 누워 있다. 사원 마당엔 인도에서 들여와 심었다는 거대한 보리수가 서 있다. 긴 바지를 입어야 하며 신발을 입구에 맡기고 맨발로 둘러볼 수 있다.

부처 치아 사리 모셔

불치사(달리다 말리가와)=부처의 치아 사리를 모신,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사원이다. 도시 자체가 문화유산인 캔디시에 있다. 기원전 300년 전 인도에서 폭동이 일어나 부처 사리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는데, 이때 치아 사리를 머리카락에 숨겨 스리랑카로 들여와 몇 곳을 옮긴 끝에 이곳에 안치하게 됐다. 하루에 세 번 사원 참배가 허용되는데, 따로 사리를 안치한 방 문을 열고 참배(사리 상자는 비공개)하려면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치아 사리는 5년에 한번씩, 부처가 태어나고 깨닫고 열반한 달인 5월 보름날(뽀야데이)에 공개한다. 치아 사리를 옮기는 과정을 그린 그림과 야자잎에 적은 경전 등이 전시돼 있다.

흥정 잘하면 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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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의 전통시장=15세기 수도였던 캔디는 콜롬보와 3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날씨가 비교적 선선해 콜롬보 시민들이 휴식을 겸해 자주 찾는 곳이다. 가장 큰 전통시장인 캔디 중앙시장은 주민의 일상을 접할 수 있는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호객을 하고 흥정하는 소리로 귀가 따가울 정도인데, 상인들이나 주민들의 표정에선 모두 친절하고 꾸밈없는 순박함이 느껴진다. 길과 2층 건물 등에 과일·생선·육류·향료·공예품·옷가지들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어, 잘 흥정하면 아주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이밖에 버려진 코끼리 보호시설인 케갈레 코끼리 보육원, 스리랑카 대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스파이스 가든, 불치사 부근 캔디호숫가의 캔디언 센트럴센터에서 벌어지는 전통춤인 캔디언 댄스 공연 등이 볼거리들이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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