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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털’
로마의 상류층 여성들은 바닷조개를 족집게처럼 써서 종아리 등에 난 털을 뽑아 냈다. 그리스에선 등잔불로 털을 지져 없앴다. (<털-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 다니엘라 마이어·클라우스 마이어 지음, 작가정신 펴냄) 다행히 고문에 가까운 이런 방법을 이제 쓰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털은 여성들에게 골칫거리다. 반질반질 피부를 자랑하고 싶은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걱정거리는 늘어간다.
주로 면도를 하던 한국 여성들이 왁싱(끈적이는 제품을 발라 털의 뿌리부터 없애는 방법)이나 레이저 시술 쪽으로도 슬슬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뉴욕에 본점을 두고 지난해 8월 서울 삼성동에 들어선 네일살롱 ‘대싱디바’의 주선희 사장은 “왁싱 해주는 방을 따로 두고 7~8가지 서비스를 하고 있다”며 “손님은 하루에 5~50명 정도로 계절에 따라 널뛰기 하지만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팔, 다리뿐만 아니라 입술 주변, 비키니 라인의 털을 없애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성기 주변의 털을 모두 제거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손님도 소수이지만 있다”고 덧붙였다. 이 매장은 올해 대전과 청주에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왁싱과 레이저 시술을 하는 ‘라마르 메디컬 스파’의 정혜정 홍보실장도 “집에서 면도를 하던 사람들이 점점 깔끔하고 안전하게 제모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밀고 뽑고…왁싱방 찾기도
이런 추세를 반영해 옥시레킷뱅키저는 영국의 제모 크림과 왁스 스크럽 상표인 ‘비트’를 지난 3월 한국에 출시했다. 이 상표를 시장 내놓기에 앞서 지난해 말께 이 회사가 15~34살 한국 여성 2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46% 정도가 어떤 형태로든 털을 없애고 있다. 이 가운데 52%는 면도를 하는데 피부 상처나 염증 등에 대한 불만이 꽤 많았다고 한다.
면도와 달리 털을 녹이는 제모 크림은 상처 날 염려 없이 효과가 3~5일 가고 왁싱은 4주 이상 피부를 매끈하게 해준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피부가 민감하거나 염증이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밖에 레이저 시술은 부작용이 적고 영구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한달 간격으로 3~5번 정도 해야 한다. 값도 꽤 비싸 무릎 아래 양쪽 종아리의 경우 약 90여만원, 양팔은 60여만원이 든다.
털을 없애려는 이런 경향을 두고 김정희 제일모직 삼성패션연구소 과장은 “맨발, 맨다리에 구두를 신는 사람이 늘어나고 건강하고 섹시하게 선탠한 피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유행과도 관련이 있다”며 “계절을 가리지 않고 털을 없애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삶의 방식이 케이블텔레비전 채널 <온스타일> 등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어서 <털>의 작가들은 “여성상의 세계화와 맞물리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이제 유럽에서도 겨드랑이 털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이 추세는 넘쳐나는 광고와 할리우드의 집중 지원 사격으로 갈수록 속도를 더하고 있다”고 썼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비트 제공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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