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봉 쪽으로 이어진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금성산성 남문 일대 모습. 오른쪽 아래의 누각이 외남문(보국문)이고, 왼쪽은 내남문(충용문)이다.
성곽 위에서 가을 햇살에 포위당하다
옛 성곽 찬 돌담에 가을 햇살이 날아와 박힌다. 산기슭을 굽이쳐 올라간 성벽을 따라 멧토끼 뛰고 다람쥐 줄달음치는 아침이다. 망루에 올라 앉으니 온 가을이 다 보인다. 단풍잎은 화살인 듯 흩날리며 목숨처럼 쌓이는데, 성벽 발치엔 오르지 못해 아우성치는 햇살 투성이 억새들이 깔렸다. 가을 햇살 낭자한 담양 금성산성의 숲길로 간다. 가을 여행의 중심 테마는 역시 단풍 구경이지만, 단풍 숲 안에 녹아 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과 조상들의 애환을 함께 엿보는 여정이라면 더욱 좋겠다. 금성산성은 빼어난 전망과 울창한 가을 숲의 정취, 역사유적의 흔적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전남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
연대봉·시루봉…능선따라 6,5km
남문 너머 담양호·동문 너머 강천사
자연문화답사 나온 아이들
까르르 웃음소리 낙옆처럼 흩날린다 전남 담양군 용면 도림리와 금성면 금성리, 전북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있는 돌성이다. 연대봉(60)과 시루봉(504m)·철마봉(47) 등 산봉들을 잇는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둘레 약 6.5㎞의 성곽이다. 내아터가 있는 내성까지 합하면 성의 총길이는 7.3㎞에 이른다. 이 산봉들을 아울러 산성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낮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 안쪽을 전혀 관찰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지다.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린다. 삼국시대 축성설이 있으나, <고려사절요> 등 여러 기록으로 보아 최소한 고려 중기 이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말기엔 성 안에 130여호의 민가가 있었고, 관군까지 2000여명이 머물렀다고 한다. 29개의 우물을 파고, 2만여석의 군량미를 저장했을 정도였다지만, 동학농민운동·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마을과 관아, 절 등이 소실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동·서·남·북의 문과 성곽은 90년대 들어 복원됐다.
금성산성 안 보국사터 앞에서 벌을 치는 용면 가마골 주민 강대율씨가 꿀이 가득 찬 벌집을 보여주고 있다.
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15분쯤 걸으면 간이 매점이 나오고, 성의 남문으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된다.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섞인 숲길 좌우로 울긋불긋 타들어가는 단풍을 감상하며 20분쯤 오르면, 우뚝 솟은 성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망루 밑의 문이 외남문이다. 외남문(보국문)과 안쪽의 내남문(충용문)을 합쳐 남문으로 부른다. 성 밖 관찰을 쉽게 하고, 적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새의 부리처럼 튀어나오게 쌓은 성곽 끝부분에 외남문이 있다. 내남문 망루나 노적봉으로 이어진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외남문쪽의 튀어나온 성곽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외남문 너머론 굽이치는 담양호 물줄기가 깔려 있고, 한켠으론 이름난 단풍 산행지인 추월산이 솟아 있다. 운 좋으면 이른 아침에 담양호를 덮는 운해가 펼쳐보이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29일 내남문 산성안내판 앞에 담양 용면초등학교 1~6학년생 10명이 둘러서서 이흥규(58)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알것니야? 요걸 보러 내성이라 하는 것이여, 요건 외성이고. 성을 요로케 불쑥 튀어나오게 맹긴 건 적의 공격을 성 양쪽에서 쉽게 물리칠라고 맹긴 것이여. 알아듣것니야?” 전교생이 61명인데, 각 학년 한두명씩으로 이뤄진 ‘사랑 고리’라는 조를 짰다고 한다. 오늘은 ‘사랑 고리’들이 금성산성으로 자연문화답사를 나온 날이다. 서로 손을 꼭 쥐고 설명을 듣는 언니·동생들이 한 형제처럼 다정해 보인다. 성을 둘러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성곽을 따라 성 전체를 한바퀴 도는 것과 성 안쪽 숲길을 따라 들어가 가까운 문을 거쳐 성곽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다. 성을 밟으며 돌면 등산과 시원한 전망 감상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길이 가파르고, 적잖은 시간(4시간30분)이 걸리므로 가족끼리 왔다면 성 안쪽을 둘러보는 게 알맞다.
금성산성 안쪽에서 바라본 내남문.
1877년 세워진, 당시 파견 관리(별장) 불망비를 지나 숲길로 들면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보국사(금성사) 터가 있는데, 성 안팎을 드나들며 사는 홍성주(65)씨의 ‘산방’앞에서 왼쪽길로 가면 서문, 오른쪽으로 오르면 북문이 나온다. 산방 부근엔 용면 가마골에 사는 강대율(71)씨가 꿀 채취를 위해 갖다놓은 토종 꿀벌통이 20개 가까이 늘어서 있다. 봄부터 모아온 잡꿀 벌통을 요즘 열기 시작했다. 오가는 산행객들에게 벌집째로 떼어주며 맛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강씨는 “전쟁 직후 가마골이 빨치산 본거지였는데, 산성 주변 길이 보급로 구실을 하게 되자 토벌대들이 산성 안의 보국사, 연대봉 암자, 강천사 등을 모두 불태웠다”고 말했다. 보국사 자리엔 건물 터만이 남아 있다. 앞서의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동자암이라는 민가와 내성을 거쳐 동문으로 이어진다. 동문으로 나가면 단풍으로 이름난 순창 강천사 골짜기로 내려서게 된다. 금성산성 들머리에서 강천사까지 약 2시간 거리다. 동자암엔 ‘청산거사’를 자처하는, 수염을 거의 배꼽께까지 기른 송철수(43)씨와 부인 김경숙(37)씨가 세 아이(동자승)에게 무예·수행 등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남문~보국사터~서문~철마봉~남문 1시간30분, 남문~동문~보국사터~남문 1시간30분. 주차료 2000원. 담양/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마냥 머물렀으면…마냥 거닐었으면…
담양읍 24번 국도 옆 옛 도로의 메타세퀘이아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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