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30일 아침 영덕 풍력발전단지. 힘차게 돌아가는 거대한 바람개비들 위로, 짙은 구름 속에 숨어 있던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포리 바닷가 해맞이공원 뒤 구릉지대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들은 2005년 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새해맞이, 1월 1일이 아니면 어떠랴
이른바 동해안 해맞이 명소들이 올초에도 북새통을 이뤘다. 짙은 구름으로 해 뜨는 모습을 만난 곳은 드물었다고 전해진다. 새해맞이 여행을 꼭 새해 첫날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달 중에 날씨 좋은 날을 잡아, 한적하고 여유있는 새해맞이 여행을 떠나 보자. 강구항에서 북쪽으로 약 40㎞
바다 한가운데·풍력발전기 너머로
고깃배·갈매기 날갯짓 사이로
해는 솟는다, 날마다 새로이… 영덕 하면 대게를 먼저 떠올린다. 대게도 대게지만, 바닷가 드라이브길이 아름답기로도 이름난 고장이 영덕이다. 바닷가에 바짝 붙어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곳곳에 전망 좋은 언덕과 아늑한 포구들을 거느렸다. 어느 때 달려도 새롭게 다가오는, 제철이 따로 없는 드라이브 코스다. 겨울 바닷바람은 매서워도, 깨끗한 겨울 파도는 한결 눈부시게 빛난다. 제철을 맞은 대게도 여행객을 기다린다. 강구항에서 북쪽으로 918번 지방도와 7번 국도를 타는 약 40㎞ 가량의 바닷가 드라이브다. 강구항은 온통 대게 천지다. 100여곳에 이르는 점포들이 대형 수족관을 갖추고 대게를 판다. 이른 아침 강구항 위판장에서 벌어지는 대게 경매 모습도 흥미롭다. 배가 들어오는 대로 수백마리의 대게를 바닥에 깔아놓고 경매가 진행된다. 복잡한 강구항 도로를 벗어나면서 곧바로 그림같은 바다 경치들이 줄줄이 다가온다. 오른쪽 차창으로 파도 부서지는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쉼없이 들이닥친다. 가까운 바다에서 물결 따라 흔들리는 검은 점들은 전복·해삼·멍게를 건져올리는 해녀들이다. 오리발을 신은 두 다리를 물위로 힘차게 뻗으며 자맥질해 들어가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탁 트인 전망은 해맞이공원에서 만난다. 바다와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진 포구들이 한눈에 잡히는 곳이다. 일렁이며 바위에 부딪치는 거센 물결이 거의 수직으로 내려다보인다. 기슭엔 나무계단 산책로가 깔려 있다. 음악이 흐르는 산책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오래 물결쳐 온 짙푸른 파도가 어떻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흩어지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언덕 위 도로변에 차를 대여섯대 댈 만한 공간이 있고, 커피 등을 파는 이동식 매점도 있다.
영덕 해안길, 노물리~석리 사이 갯바위에서 돔·놀래미 등을 잡고 있는 낚시꾼들.
해맞이공원에서 산길을 타고 오르면 거대한 바람개비들 세상이 펼쳐진다. 최근 영덕을 대표하는 또하나의 명물로 떠오른 풍력발전단지다. 기둥 높이 80m, 날개 지름 82m짜리의 거대한 흰색 풍력발전기 24기가 색다른 풍경화를 그려낸다. ‘쉭 쉭’ 거친 숨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바람개비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장엄하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하다. 이 바람개비들에서 영덕군이 1년간 쓸 수 있는 전력이 생산된다고 한다. 10년 전 창포리 일대 야산에 산불이 나 볼품없는 민둥산이 되자, 군에서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게 됐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지막 전투장면 등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영덕군은 야산에 6㎞ 길이의 산책로를 만들어, 달맞이·해맞이 산행을 하는 관광지로 꾸밀 계획이다. 올 상반기까지는 높이 10여m의 전망대도 마련된다. 해맞이공원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대탄·노물·경정·축산·대진리 등 크고작은 포구들 주변에선 오징어 말리기 작업이 한창이다. 길가 철조망이나 지줏대를 세워 만든 건조장에 내걸린 수백 수천마리의 오징어들로, 918번 지방도는 곳곳이 오징어 터널을 이뤘다. 경정리 포구에서 오징어를 걸고 있던 한 주민은 “하루 말리면 피데기(반건조 오징어), 4~5일 말리면 건오징어가 된다”고 말했다. 말리는 해산물은 오징어가 가장 많지만, 꽁치(과메기)·명태 등도 만날 수 있다. 길가에 차량이 줄줄이 주차돼 있다면, 그 밑에 조황 좋은 갯바위 낚시터가 있다고 보면 된다. 우거진 바윗자락에 앉고 서서, 찬 바람 거센 파도를 견디며 돔·놀래미 등을 낚는 꾼들로 장사진을 이룬 곳이 많다. 해안도로는 본디 강구항에서 축산항까지의 918번 지방도, 즉 강·축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졌지만, 대진~고래불해수욕장~병곡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연결해 더 길어졌다. 고래불해수욕장엔 경비행기 탑승장과 활주로가 있어 체험비행을 하며 바닷가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다. 1인 15~20분, 3만원.
경정리 포구에 내걸린 오징어떼
해맞이 장소=이 해안도로상에서 해맞이를 할 수 있는 곳은 해맞이공원뿐이 아니다. 굽이굽이 언덕들과, 언덕 사이에 안긴 포구들에서 모두 근사한 해돋이를 지켜볼 수 있다. 탁 트인 전망 한가운데서 솟는 해를 보려면 해맞이공원 등 높은 언덕을, 출어하는 고깃배와 날갯짓하는 갈매기들 너머로 솟는 해를 감상하려면 포구를 찾으면 된다. 풍력발전단지의 바람개비들 주변으로 떠오르는 해돋이도 감상도 가능하다. 관리소 옆길로 들어 비포장길을 굽이굽이 10여분 차로 달리면, 주변보다 높은 산봉우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바다 전면을 보기가 쉽지 않고, 겨울엔 해가 솟는 지점이 바람개비가 적은 쪽이어서 다소 아쉽다. 영덕/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영덕 대게’ 비싸도 일단 먹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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